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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흑백남녀 같이 자면 7년 노역형, 어제의 남아공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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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검은 밤의 무지개
도미니크 라피에르 지음
임호경 옮김, 중앙북스
380쪽, 1만5000원

우리에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분리’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와 ‘넬슨 만델라’로 기억되는 나라다. 이제 한 달 후면 이곳에서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 축구가 열린다. 세계의 눈이 아프리카 남단으로 몰릴 것이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남아공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만델라가 수감됐던 로벤섬에서의 축구 이야기, 흑백 화합을 이뤄낸 럭비 월드컵 이야기 등.

여기 또 한 권의 남아공 관련 책이 나왔다. 남아공 근현대가 오롯이 담긴 책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소설 형식을 빈 역사책이다.

17세기 희망봉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이 조국 네덜란드와 영국을 상대로 싸우며 ‘아프리카너’(아프리카에 사는 백인)가 되는 과정, 줄루족 등 토착민과의 전쟁, 다이아몬드와 황금을 찾아 몰려오는 사람들,악명을 떨쳤던 아파르트헤이트의 생생한 증언, 만델라의 등장, 흑백 화합에 공헌한 인물들. 읽다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신대륙 이주-독립전쟁-골드러시-인디언(네이티브 아메리칸)과 줄루족-흑백 갈등-마틴 루터 킹과 만델라, 그리고 오바마. 그래, 미국 역사와 완벽한 ‘데자뷰’다.

괴혈병으로 쓰러지는 상선 선원에게 제공하기 위해 희망봉 근처에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재배한 것이 남아공 백인의 시작이라는 사실, 아파르트헤이트의 배경에 아돌프 히틀러가 있었다는 사실, 흑백간 성관계를 하면 7년 노역형에 처해졌다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내용이 눈길을 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간 것은 작가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능력이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시티 오브 조이’ 등을 쓴 라피에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논픽션 작가다. 그는 실존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역사를 풀어간다. 그가 30년전부터 수입의 절반을 세계의 빈곤과 싸우는 데 쓰고 있다는 사실은 남아공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이 책에 담겨 있음을 느끼게 한다.

손장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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