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동 진출,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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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펜타곤에 대한 테러 공격 이후,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군사공격이 시작되고 빈 라덴의 추가 테러 위협, 탄저병 발생 및 확산 등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슬람 국가에서 연일 대규모 반미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마치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서방국가들과 중동국가들이 조만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다.

그러나 이곳 이집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동국가들의 현지 상황은 한국에서 우려하는 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수천㎞ 떨어져 있는 이집트의 경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공격이 개시된 이래 대학생들이 산발적으로 반미시위를 벌이고 있으나, 당국의 적절한 조치로 일반 국민들은 열심히 생업에 종사할 뿐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계획된 무역상담회를 비롯한 각종 현지행사가 안전을 이유로 속속 취소되고 있으며, 세일즈 출장자는 물론 일반 관광객의 발길마저 뚝 끊어져 버렸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와 우리 상품에 대해 호의적인 대다수의 중동국가에 발길을 끊어서는 안될 일이다.

경쟁이 치열한 선진국시장에서의 열세를 개도국 시장 진출 확대로 만회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이곳 이집트 바이어들은 서구에서의 반아랍,반이슬람 정서의 확산과 항공여행안전에 대한 우려로 인해 해외출장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이들은 이곳까지 찾아오는 수출상을 고마워하며 크게 반기고 있다. 우리측 사정으로 취소되었지만, 무역상담회 개최에 대한 안내광고가 이집트 일간지에 게재되었을 때 코트라카이로무역관에 상담문의가 빗발쳤던 사례가 이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이집트는 명실상부한 중동지역 중심국가이며, 아랍국가들은 이집트의 리더십을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도 이집트의 중요성을 인식, 8백명의 외교관을 파견해 전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상에서 중재역을 맡아왔던 이집트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중동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더욱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물론 단기적으로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경기위축이 예견되고 있으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후 선진국의 중동국가들에 대한 대외부채 탕감, 무상원조 확대 등 아랍권 달래기가 본격화된다면 이집트와 중동경제가 다시 활황세를 탈 것임이 확실시된다.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카타르.오만.바레인 등 중동 산유국들도 고유가가 지속된 2000년에 원유수출로 벌어들인 오일머니 유입액이 1천6백60억달러를 상회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산업구조 다변화 전략을 재추진하고 있어 이들 국가의 내수 또한 확대일로에 있다.

중동정세 및 이슬람 문제를 좀 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국제정치적 위기상황이 제공하고 있는 경제적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겠다.

그간 중동시장에서 애로점으로 지적돼 왔던 신인도 저하에 대규모 플랜트 및 건설수주에 필수적인 자금조달 능력의 부족을 만회하고 중동시장 전역에 코리아의 위상도 확고히 정립해야 하겠다.

지금이야말로 대중동 통상.투자전략을 새롭게 검토해 나가야 할 시점이며,중동에 다시 진출할 수 있는 적기다.

오윤경(주이집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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