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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적 개념의 전환은 시대적 요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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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950년대 미 시카고대의 사회공학 교수였던 토머스 쿤은 그의 유명한 저서 '과학적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한 사회의 문화.문명의 진보 또는 사회의 진화적 발전을 위해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군사력, 과학적 기술, 금융의 힘, 또는 그 어떠한 요인보다 '관점의 전환(The Paradigm Shift)'이라고 지적했다. 쿤의 이 용어는 전 세계 사회과학자들의 합리적 사고의 틀이 됐으며 이는 탈보수적 관점의 시대적 중요성을 실현케 했다. 대부분의 선진국 시민들과 그들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같은 전환 관점을 그들 사회의 여러 제도와 프로그램 운영 및 사회적 관계를 위한 이론적 준거의 틀로서 적용하고 있다.

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미 하와이 진주만 폭격으로 발발한 미.일 전쟁은 45년 8월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된 미군의 원폭 투하로 종결됐다. 그러나 50년대의 한국전쟁, 60~70년대의 월남전쟁에서 미국은 그들의 군수물자들을 일본에서 조달케 함으로써 일본경제를 재건케 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일 동맹관계는 어느 나라보다 견고하다. 과거의 적이 오늘의 동반자가 됐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 지도자들의 관점의 전환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가장 주적이었던 중공은 20년 후인 70년대 중반에 닉슨 대통령의 주적 개념의 전환을 통해 적대적 미.중 관계는 동반자적 관계로 전환되었고 이 같은 관점의 전환을 실현한 닉슨 행정부는 동아시아의 정치.경제 및 사회적 안전과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36년 동안 우리나라와 국민 모두에 가장 가혹한 상처를 입혔던 일본에 대해서도 이승만은 관점의 전환에 소홀했으나 박정희는 새로운 시각으로 한.일 관계개선을 도모한 이후 우리 사회의 제반 분야에 발전의 계기를 낳게 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김대중 행정부의 대북 관점의 전환 또한 우리 국민을 전쟁 공포의 늪으로부터 탈피케 하여 시민들을 정신.심리.사회적으로 안전감을 갖게 한 효과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사회적 낭비를 감소케 한 결과를 낳았다. 관점의 전환을 창달한 지도자만이 그 사회를 안정과 발전으로 기약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 적대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지도력은 그 사회의 보수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과거의 피해의식에 기초한 감성을 극복할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는 지도자의 역량이 필요하다.

역사의 연속성과 문화적 진보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정서적 안정을 보장해 주었던 과거적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이 다가오는 많은 도전에 대한 새로운 대응전략을 위해 사회적 결단과 설계가 필요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또한 한 사회의 문명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은 그 사회의 시민이 그들의 분노의 감정을 얼마만큼 승화시킬 수 있느냐가 척도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앞에서의 여러 관점에서 볼 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주적개념의 전환은 시대적 요청이며 우리 시민 모두는 이 같은 관점 전환에 높은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우식 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