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참여 적고 세금낭비” 눈총에도 … ‘선거용’된 짝퉁축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6.2지방선거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봄맞이 향토 축제가 선거용으로 둔갑하고 있다. 말만 축제지 실제는 유권자 표심을 잡기 위한 짝퉁 축제가 많다. 행사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기는가 하면, 주요 이벤트의 초점을 자치단체장에게 맞추기도 한다. 정작 축제의 주인공이어야 할 주민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귀중한 세금이 줄줄이 새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올해 전국 지자체의 축제는 813개. 이 중 23%인 187개가 4월과 5월에 열린다. 새 단체장이 들어서면 과거 행사를 폐지하고 새로운 축제를 만드는 게 다반사다. 외지 관광객을 불러들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자신들의 치적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경주대 김규호(관광레저학) 교수는 “민선 자치단체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 생긴 축제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며 “지자체가 아닌 독립 기구를 만들어 축제를 치러야 정치색을 벗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09년 5월 이팝나무 꽃 만개했던 대전 유성구 ‘눈꽃축제’ 대전 유성구는 봉명동 온천문화길 일대에서 해마다 이팝나무 꽃이 만개할 무렵인 5월 10일을 전후해 축제를 열었다. 지난해 축제 때는 꽃이 활짝 피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선거 맞춤용 축제=‘유성 예스 5월의 눈꽃축제’ 마지막 날인 지난 2일 오후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온천문화길 도로변. 관광객 40여 명을 태운 경기 74머 XXXX호 관광버스가 한 대 멈췄다. 버스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은 “왜 꽃이 없지” “지난해에 꽃이 너무 예뻐 올해 또 왔는데”라며 투덜거렸다. 하얀 이팝나무 꽃을 기대하며 눈꽃축제장을 찾은 이들은 온천욕만 하고 돌아갔다. 최영훈(60·경기도 수원시)씨는 “인터넷 홍보와 달리 (이팝)나무에 꽃은 피지 않고 꼬마 전구만 달려 있는 것을 보니 사기당한 기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전시 유성구가 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눈꽃축제’를 앞당겨 강행한 이유가 뭘까. 이와 관련, 주민들은 6월 선거에 출마하는 유성구청장이 예비후보 등록(시한 5일) 전에 축제를 서둘러 연 것으로 보고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게 되면 자치단체장은 사직해야 하기 때문에 축제에 참가할 수 없다. 진동규 구청장은 축제 기간 내내 현장을 찾은 주민 수천 명에게 인사하며 얼굴을 알렸다.

2010년엔 열흘쯤 앞당겨 꽃 한 송이 안 핀 4월 말에 결국 전구 켜고 행사 … 왜?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 정도 앞당겨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축제를 여는 바람에 꽃이 피지 않았다(왼쪽). 주최 측은 개화를 앞당기기 위해LED 꼬마전구 30여만 개를 설치했으나 꽃은 피지 않았다(오른쪽). 구청 측은 “온난화 영향으로 개화시기가 빨라질 것으로 기상청이 예보해 축제를 앞당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07년 시작한 눈꽃축제는 1, 2회는 5월 10일, 지난해엔 8일에 개막했다. 올해는 4월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열었다. 예산은 지난해보다 5000만원이 늘어난 4억5000만원이다. 진 구청장은 “기상청이 온난화 영향으로 개화 시기가 빨라질 것이라고 해서 축제를 앞당긴 것”이라며 “꽃이 진 뒤 축제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민 박모(37)씨는 “꽃 없는 축제도 문제지만 천안함 사태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데 축제를 예년보다 앞당겨 강행하는 것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출마할 단체장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자치단체장이 주인공=한의원·한약방·인삼사 등 한약 관련 350여 업소가 밀집한 대구시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 입구. 1일 오후 열린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의 개막식에는 시민 수백 명이 몰렸다. 내빈석 한가운데에 김범일 대구시장, 윤순영 중구청장과 지역 국회의원이 자리를 잡았다.


사회자가 개막식 첫 순서인 ‘어지(御旨·임금의 말씀) 전달’을 알렸다. 약령시보존위원회 이사장이 두루마리 형태의 어지를 김 시장에게 전달했다. 이를 펼쳐 든 김 시장은 “…약령시를 개시하여 만백성을 평안히 하도록 하라”고 큰 소리로 낭독했다. 약령시의 개장을 알리는 행사다. 조선 효종의 명으로 1658년 시작한 대구약령시(한약재 유통시장)를 재현한 것이다. 이후 김 시장과 윤 구청장은 두 시간가량 축제 현장을 돌며 시민들과 일일이 인사를 건네고 악수를 나눴다. 이들은 모두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상태다.

현장을 지켜보던 이모(53·상업·대구시 남산동)씨는 “행사의 주인공이 시장·구청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축제가 주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단체장의 얼굴과 치적을 알리는 ‘선거용’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매년 5월에 축제가 열리는 데다 대구시가 주최하는 행사여서 시장이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 없어도 강행=지난 1일 오후 전북 임실군 오수면 ‘의견공원’. 하루 전 개막한 ‘오수의견문화제’는 썰렁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한산했다.

6600㎡의 공원 운동장에는 방송공연을 위한 무대와 애견 패션쇼, 워킹, 도그쇼, 장애물 경주 등을 위한 갖가지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행사장에는 대전·부산·대구 등 대도시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200~300여 명의 애견 동호인과 공무원·주민 등 400여 명만 있었다. 메인 무대를 빙 둘러 자리 잡은 40여 개의 애견 용품가게, 지역 특산품 판매점도 한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행사장 입구에 줄지어 선 30여 개의 상가 천막 코너에도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 출마가 예정된 군 의회 김학관 의장이 나와 주민들에게 인사하느라 바빴다. 김진억 군수는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볏짚공예 체험장 관계자는 “참가자가 없어 너무 심심하다. 짚신·삼태기·멍석 등을 만드는 재료를 다시 가져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축제는 자신의 몸을 던져 술 취해 잠든 주인을 불길 속에서 구해낸 충직한 오수 개를 기리고, 지역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자는 취지로 시작한 행사다. 올해 벌써 26회째다. 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전체 2억원. 이 중 임실군이 1억3700만원, 교육청이 2000만원을 지원했다. 행사장인 의견공원은 주변 테마파크의 땅값을 포함해 200억원을 들여 지었다.

한 주민은 “농민들은 단돈 몇 만원 쓸 때도 꼼꼼히 따져보는데, 저런 시시한 행사에 큰돈을 흥청망청 들이니 군의 살림살이가 절단 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실군의 1년 예산은 2500여억원. 재정자립도는 11.3%에 불과하다. 전국 246개 기초단체 가운데 하위 10%에 든다. 하지만 의견문화제 같은 축제를 1년에 다섯 차례나 개최한다. 소충·사선제(10월)와 치즈축제(10월), 산머루축제(9~10월), 고추축제(10월) 등이다. 군은 1억5000만~3000만원씩을 지원한다.

글=장대석·서형식·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