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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와 항공모함에서 욕망 덩어리를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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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시회에 선보일 ‘맨드라미’와 ‘항공모함’ 사이에 선 김지원씨는 “올 봄 한반도에서 펼쳐졌던 모든 지리멸렬한 부조리를 내가 그리고 있는 항공모함에 차곡차곡 실어서 지구 밖으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맨드라미,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화가가 먼저 물었다. 우물쭈물 하다가 또 기습을 당했다. “맨드라미 씨앗을 털어보신 적이 있어요?”

경기도 포천시 소훌읍 이곡리 외진 산자락에 오도카니 선 작가의 화실은 맨드라미 천지였다. 화가 김지원(49·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씨를 ‘맨드라미 작가’라 부를 만하다. 어떤 이는 그냥 꽃그림이라 했고, 다른 누군가는 동물적이면서 식물적인 것이 뒤섞인 이중성을 짚어냈다.

“맨드라미를 털어보면 씨앗이 상상도 못하게 많이 나와요. 그 욕망과 사랑과 생존본능이 징그러울 정도죠. 난 그 맨드라미 그림 속에 혁명 하나, 또 맨드라미 속에 독사 한 마리, 다시 그림 속에 연정 하나를 그리죠. 보는 이 마음에 핀 맨드라미로 읽으시길 바라며….”

맨드라미 그림 옆에 항공모함 그림이 나란하다. 이 무슨 조화인가. 맨드라미와 항공모함이라니. 작가는 “맨드라미랑 항공모함은 거대한 욕망 덩어리란 점에서 통한다”며 “항공모함 안이 얼마나 큰지 탈영병이 있다더라”고 능청을 떤다. 인간 욕망에 대한 서사를 화가는 꽃과 군함이라는 극과 극의 상징 속에 풀어놓는다. “시뻘겋다 못해 시커멓게 자진해 가는 맨드라미, 병사들을 수천 명씩 싣고 바다에 떠 전쟁을 준비하는 항공모함, 이 둘 사이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다”고 한숨짓는 작가 얼굴이 무심하다. 2010년 봄 한반도를 강타한 ‘천안함’의 진실을 화가는 ‘맨드라미’라 부르고 싶은 것일까.

스스로를 뉴스 중독자이자 이미지 채집가라 부르는 화가는 그림 얘기로 돌아갔다. “그림이 말도 못하게 어려워요. 근데 이게 매력이에요. 난 잘 그리려고 그리는 게 아니에요. 잘 그린 그림은 많죠.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좋은 그림이란 무엇일까. “캔버스를 옆으로 세워 놓으면 아무 것도 안 보이죠. 이젠 실수로 우연히 떨어뜨린 물감 자국도 용인하게 됐어요. 그림을 꽉 채워서 안 그리고 1㎝쯤 버리기도 하고요.”

화실 벽을 빙 둘러친 시렁마다 포장된 그림이 산더미다. 몇 점쯤 되냐고 물었더니 “800개쯤 세다가 포기했다”고 답한 화가는 “더디면 어떱니까” 되물었다. 작업실에는 작가가 직접 만든 나무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거북이가 기어 다닌다.

6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에 김지원씨는 맨드라미와 항공모함 연작 외에 드로잉 40여 점을 함께 건다. 비행장의 트랩을 그린 ‘이륙하다’, 통신 안테나 탑을 묘사한 ‘수신하다’는 현대 도시인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은근히 뜸들이며 스케치한다. “우린 수신하고 발신하기 위해서 사는 것 같지만 수신과 발신이 고독감을 대변해주지는 않죠”라는 게 작가의 말이다. 맨드라미 그림 속 어딘가에 화가가 새끼 손톱만하게 그려 넣었다는 검정 옷을 입은 자화상을 끝내 찾지 못했다. 02-515-9496.

포천=글·사진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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