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중 관계, 천안함과 북핵 문제 우회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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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예전에 비해 ‘요란’했다. 동선을 일절 드러내지 않았던 과거 네 차례의 방문 때와 달리 다롄(大連)과 톈진(天津)의 항만과 공단시설을 둘러보면서 한국과 일본 언론에 다리를 저는 모습까지 드러냈다. 왜 그랬을까. 의도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참에 중국으로부터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끌어낼 것임을 외부에 과시하려는 것이다. 이미 북·중 간에는 나선과 신의주 등의 개발에 중국이 적극 참여한다는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생각대로 나선과 신의주가 다롄과 톈진처럼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북한이 핵개발과 천안함 사건 도발 등 막무가내로 국제평화 질서를 깨뜨리는 한 북·중 관계의 순탄한 발전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중 양국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한·미 양국의 사전 권고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을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이 일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는 중국이 한국이나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 악화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천안함 사건이나 핵문제를 완전히 묵살하고 북한과 맹목적인 관계 발전을 추구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김정일에게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토록 권유해 왔다. 그러나 김정일은 2001년 상하이(上海)를 방문해 천지개벽(天地開闢)을 이뤘다고 놀라워하면서도 중국의 권유는 한사코 외면해 왔다. 오히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며 국제사회와 대립각을 세우고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협해 왔다. 서해상에서도 대남 도발을 일삼은 끝에 급기야 천안함을 폭침시켰다는 강한 의심을 사고 있다.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 번영을 구가하는 중국과 베트남을 보면서도 북한이 이런 행보를 계속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미명(美名)으로 포장한 ‘신격화된 1인 독재체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이번에도 김 위원장에게 개혁·개방을 추진토록 권유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또 하루빨리 핵문제를 해결하고 국제사회와 교류할 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인지를 분명하게 묻고, 사실이라면 한국에 사과와 배상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3대 세습을 포기하고 21세기 역사발전 조류에 동참할 것도 권유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에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책임과 의무다.

북·중 관계의 발전이 결코 지역 평화와 세계평화, 공동 번영의 큰 흐름을 거슬러가며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특히 중국은 국제관계의 원만한 발전이 경제성장의 디딤돌임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적 탕아(蕩兒)로 남아 있기를 한사코 고집하는 북한을 언제까지고 감싸기만 해선 안 된다. 중국이 맹목적으로 북·중 관계에 매몰되는 것은 대국으로서의 명분에도 맞지 않고, 중국의 지속적 발전이란 실리(實利)에도 어긋난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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