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시 대북경고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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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 중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강도 높게 경고해 눈길을 끌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상하이(上海)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아시아 일부 언론과 가진 회견에서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 몰두하는 바람에 한국 정부와의 협정에 대한 우리의 몫을 이행할 태세가 돼 있지 않을 것으로 오판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틈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쐐기를 박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화 재개 제의를 무시하고,서울 답방 약속을 안지키고, 느닷없이 이산가족 상봉 계획을 연기하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부시 대통령은 "도대체 알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또 "지나치게 의심하고 비밀스러운 점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金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변화가 없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마당에 부시 대통령이 경고의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9.11 테러 대참사 이후 국제질서는 테러세력과 반테러세력이라는 구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은 적과 동지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는 이른바 '부시 독트린'을 밀어붙이고 있다.

과거의 적도 동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불량국가'로 낙인찍은 테러지원국 리스트도 반테러 연대에 대한 동참 여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중 한 나라인 수단에 대해 미국은 이미 제재조치를 해제했다. 선택에 따라서는 북한도 테러지원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토머스 허버드 신임 주한 미국대사는 그제 KBS와의 특별회견에서 "북한의 반테러 성명을 인정하고 환영한다"면서 "북한이 단순한 성명 발표를 넘어 더 큰 기회를 붙잡기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반테러 연대에 동참해 테러지원국의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권유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가시적 조치를 통해 반테러 대열에 동참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불량국가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조치는 이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제안한 남북한 반테러 공동선언 참여나 테러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 가입의 형태가 될 수 있고, 북한 내 요도호 납치범의 제3국 송환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백색테러 공포의 주범인 생화학무기 사용금지에 관한 남북간 협정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경고를 기회로 받아들여 테러지원국의 족쇄를 푸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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