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꽁치외교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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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과 러시아.중국.일본은 동북아의 주도적 핵심국가들이다.

이들 4개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경제.정치.군사적 전략관계, 이념적 연대성, 역사와 문화 등으로 얽히고 설켜 있다.

군사.이념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이, 경제와 역사.문화적 측면을 고려하면 한.중.일이, 그리고 통일과 북한을 포함한 보다 더 복합적인 전략관계를 염두에 둔다면 한.중.일.러가 얽혀 있다. 여기다 또 다른 이해당사국인 미국이 있다. 이들 5개국은 사안에 따라 서로 협력도 하고 갈등도 한다.

*** 눈에 안보인 복잡한 계산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는 냉전 시기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북아의 주요 행위자라고 할 수 있는 5개국은 크게 봐 2개의 축(軸)으로 나눠져 서로의 배타적 이익을 보호하고 안주하는 상황이었다.

하나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으로 연결되는 자본주의.민주주의 축이고 다른 하나는 소련(러시아).중국.북한으로 연결되는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축이었다.

이러한 양대 축에 근원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한국에서는 노태우(盧泰愚)정권이 북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소련에서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이 효력을 발휘하던 시점이었다.

여기다 중국의 경제개혁 실험이 성과를 보이면서 아시아의 새로운 경제엔진으로서의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공교롭게도 경제가 장기침체에 접어드는 시점에 동북아 기본축의 변화가 초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과 새롭게 다가서는 러시아, 그리고 우리의 반쪽이라는 북한에 대한 한국인의 우호적 감정은 김대중(金大中)정부 들어 추진된 햇볕정책으로 인해 더욱 상승됐다.

마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한때 복고주의적 경향의 '이레덴티즘(irredentism)'이 득세했듯 이 기간 중 한국에서는 전통 우방인 일본과 미국에 대한 한국민의 섭섭함이 더욱 심화되고 대신 북방국가에 대한 우호적 감정이 득세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최근 꽁치외교를 둘러싼 한.러.일 3국간 갈등은 3국 모두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계산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민은 일단 한국 정부에 대해 주변의 정보에 둔감하고 너무 아마추어적으로 대응했다는 비난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 후 한국민들은 일본과 러시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는 대국으로서 순간적인 경제적 이익이나 갈등 때문에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을 배신한 것이다. 이는 대체어장의 제공 등과는 다른 문제며 한국민들의 뿌리깊은 러시아 불신증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내각 등장후 한.일간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깨뜨리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주변국의 감정을 고려치 않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하는 것도 그렇고 교과서 왜곡을 정당화하려는 기도도 그렇다.

일본인도 한국에 대해 섭섭함이 있겠지만 한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주변국과 원만한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을 일단 야기한 후 협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담보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 日, 對한국 갈등 부담될 듯

최근의 꽁치외교는 이런 점에서 보면 일본외교의 실패다. 일본은 보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과의 감정의 골을 메워가야 한다. 일본이 21세기를 내다본다면 그리고 일본인들도 피부색을 극복할 수 없는 어쩔수 없는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주변국과 갈등을 확대시키는 정책은 부적절하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 국면 속에서 주변국,특히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체제라는 측면에서 연대할 수 있는 한국과의 갈등을 확대시키는 정책을 써서는 일본은 놀라운 흡인력을 갖고 무섭게 다가서는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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