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의 오! 캐스팅] 5. 개런티는 성적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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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올해 '친구'가 나오기까지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쉬리'와 '공동경비구역JSA'에 동시에 출연했던 배우이자 지난해 흥행 순위 1,2위에 나란히 랭크된 '…JSA'와 '반칙왕'의 주연배우는? 다 알다시피 송강호씨다.

'초록물고기'에서 별무늬.달무늬 요란한 셔츠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진짜 양아치 건달을 캐스팅했을 거라고 오해를 할만큼 리얼한 연기를 보여줬던 그는 이 영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출연한 경력도 있지만. 그때 그가 받은 개런티는 3백만원으로 알려졌다.

'초록물고기'에서 '공동경비구역JSA'까지 6편. 그리고 현재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받은 개런티는 드디어 3억원을 돌파했다고 한다.3백만원에서 3억원은 1백배의 차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단역의 기회를,조연의 기회를 그냥 놓쳐버리지 않고 최선의 자세로 최고의 연기를 구현해내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선택해 '송강호식'으로 탄생시킨다. 그 힘이 1백배 상승이란 결과를 낳았다.

보통 신인연기자가 주연으로 데뷔한 경우에 받는 개런티는 적게는 1천만원에서 3천만원선. 이후 그 영화가 성공하면 10배로 뛰는 것은 시간문제다. '무사'의 주진모씨는 그의 데뷔작 '댄스댄스'에서 1천5백만원을 받았고, '해피엔드' '수취인불명'을 거쳐 '무사'에서 10배 가까운 개런티를 챙겼다.

여배우 중 현재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전도연씨는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 '접속'에서 4천만원, 이후 '약속' '내 마음의 풍금'으로 1억원대를 넘어서 '해피엔드'로 1억7천만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로 2억원대를 넘기더니, 현재 촬영 중인 '피도 눈물도 없이'로 2억6천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 역시 송강호씨처럼 단 한번도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큰 실패 없이 성공을 거듭하며 얻게 된 고액의 개런티인 셈이다. '…JSA'에서 1천5백만원을 받았던 신하균씨는 '킬러들의 수다'와 '복수는 나의 것', 단 두 작품으로 1억원대의 강(□)을 건넜다.

반대로 흥행에 실패하면 개런티가 하향조정되는 계약 방식이 충무로에 통용되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단 올라간 개런티는 다시 내려오지 않고, 캐스팅 담당자는 시장 내에서 그 배우의 가치가 예전같지 않다고 판단됨에도 불구하고 높은 개런티를 지불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캐스팅을 꺼리거나 아예 리스트에서 지우는 식이 요즘의 풍토다. 그런 이유로, 한때 최고의 연기자이자 스타이며 당연히 최고의 개런티를 챙겼던 배우들을 요즘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개런티 상승곡선은 무척이나 가파르고, 그것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일은 거의 전무한 것이 한국 영화계의 개런티 지표인 셈이다. 배우 기근을 외치며 '그 밥에 그 나물'식으로 특정 스타만 바라보면서 얻게 된 자업자득일지도 모르겠다. 제2의 송강호는, 예리한 눈과 도전적인 캐스팅 전략으로 승부하는 영화 만드는 이들과, 자신에게 온 작은 기회도 절대 놓치지 않는 또 다른 무명의 연기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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