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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자금난 빠진 국내항공업계 'SOS'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15일 오후 8시20분 인천발 미국 로스앤젤레스(LA)행 대한항공 011편.

예전 같으면 30여명의 탑승 대기자가 있을 만큼 승객이 많았던 이 비행기에 빈 좌석이 군데군데 보였다. 3백75명 좌석에 탑승자는 2백67명. 탑승률 71%다.

열두 좌석인 퍼스트 클라스에는 달랑 2명만이 탔다. 이 비행기는 그나마 LA에 사는 교민들이 많아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한항공 고인수 부장은 "2백70명 좌석에 80여명만 태우고 간 적도 있다"며 "계절적으로 비수기인 11월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업계가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있다. 테러사건 이후 생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군살을 빼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보다 못한 정부는 이날 항공업계에 2천5백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세계 유수업체들도 뻥뻥 나가 떨어지는 '항공 총불황'의 한파를 이기기엔 힘이 부칠 뿐이다.

◇ 겹고통을 받고 있는 업계=항공업계의 어려움은 지난해 시작됐다. 경기침체로 승객이 크게 줄고, 기름값과 환율이 불안해 경영실적이 나빠졌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4천6백여억원, 아시아나는 1천5백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두 항공사의 적자는 모두 5천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미 테러사건이 터진 것이다. 승객은 더 줄고 보험료가 오르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두 항공사는 지난달 테러참사의 여파로 운항을 중단한 데 따른 직접 손실 2백57억원, 연말까지 매출 감소분 3천6백60억원, 보험료 인상분 1천3백억원 등 모두 5천2백억원의 손실이 날 것으로 추산했다.

목돈이 나올 항공기 매각도 지지부진하다. 대한항공측은 "B747 4대 등 11대를 팔려고 내놓았지만 사려는 항공사가 없다"며 "세계적으로 수백대의 비행기가 매물로 나와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직접 지원 나선 정부=정부는 2천5백억원 지원과 함께 임차항공기의 농특세(76억원), 국내선 항공유에 대한 석유수입 부담금(70억원)을 내년 말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현재 7%인 국내선 항공유 관세율은 5%로 낮추기로 했다.

또 내년 1월과 2월 만기인 4천억원 규모의 대한항공 회사채를 차환 발행하고 연말까지 아시아나항공이 2천5백억원 상당의 제2금융권 기업어음(CP)을 상환할 수 있도록 채권은행단측에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건설교통부 함대영 항공국장은 "테러라는 돌발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항공업계가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특혜 지원은 아니다"며 "항공사들은 더 강력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스스로 살 수 있나=업계는 이번 대책으로 9천억원의 지원효과가 생길 것으로 본다.하지만 앞날을 장담하기는 힘들다.

아시아나항공 자금팀의 한창수 부장은 "정부 지원으로 일단 유동성 위기에서는 벗어났다"며 "연말 성수기와 내년 월드컵 특수, 한류(韓流)열풍에 따른 승객 증가 등으로 자금사정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의 보복공격과 2차 테러 불안감으로 탑승객이 계속 줄어들 경우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김동섭.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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