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조선시대 화훼영모전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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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채마밭에서 홍당무를 갉아먹고 있는 들쥐와 깊은 산속의 준수한 사슴. 연꽃 위를 날고 있는 잠자리, 떼지어 춤추는 호랑나비와 솔가지에 붙은 매미. 활짝 핀 국화와 늙은 단풍나무, 패랭이 꽃과 난초.

동물이나 곤충, 꽃이나 풀을 그린 그림이 바로 '화훼영모화'다. 화(花)는 꽃, 훼(卉)는 풀, 영(翎)은 새의 깃털, 모(毛)는 짐승의 터럭을 이르는 데서 온 명칭이다.

화훼영모화는 그동안 산수화나 인물화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소품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생활 주변의 익숙한 사물을 그릴 때 오히려 화가가 자신의 정서와 그림에 대한 태도를 부담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감상하기 쉽고 보는 마음이 편안해 동양화에 대한 별도의 지식 없이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화훼영모전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걸작 1백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뜻깊은 전시다(28일까지).

겸재 정선을 필두로 공재 윤두서.현재 심사정.표암 강세황.화재 변상벽.삼기재 최북.오원 장승업.단원 김홍도.사임당 신씨.능호관 이인상 등 50여명의 진품을 볼 수 있다.

"번거로운 규제를 받게 될까봐" 신청을 하지 않았을 뿐 국보나 보물지정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간송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전시'라는 평가는 이번의 가을 정기전시에도 적용된다.

작품은 17~18세기 조선 후기의 진경시대를 주도했던 인물을 중심으로 했으나 흐름을 비교하기 위해 조선 전기와 말기의 것도 함께 내놨다. 최완수 실장은 "꽃과 동물은 주변에서 가장 쉽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며 제일 많이 그리는 그림"이라며 "그동안 이런 류의 전시가 한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기획"이라고 말했다.

최실장은 전시에서 화풍의 '변화'에 주목해보라고 권한다. 예컨대 16세기 김시의 '야우한와(野牛閒臥)'나 이경윤의 '유음기우(柳陰騎牛)'에 담긴 소는 한국에는 없는 중국 물소다.

중국화에 등장하는 소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이후 17세기 후반부터 우리의 산하와 동.식물을 실제로 밟고 겪어보고 옮긴 진경(眞景)시대가 시작된다.

한국의 황소는 이때부터 등장한다. 중국에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사대사상이 퇴조한데다 고도로 발전된 조선성리학의 자부심을 기반으로한 새로운 모색의 기운이 진경시대의 배경이다.

전시와 함께 나온 '간송문화'에 글을 쓴 강관식(한성대 회화과) 교수는 "진경시대 화훼영모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현실적 인식과 이 새로운 인식에 대한 참신한 사생풍의 사실적 조형에 있다"고 설명했다.

입장료 없음. 02-762-0442.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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