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허순위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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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니가 집이 어데 있노. 니는 집이 없다.

니는 시에 몸 판 년

니는 니 있는 거가 니집이다.

-허순위(1955~ ) '집'중

'시에 몸 판' 여자는 시밖에 쓸줄 모른다. 그만큼 치열하게 사는 여자도 있고, 자신을 태우지 않고, 가꾸는 여자도 있다. 허순위씨의 몸은 시다. 그가 사는 집이 따로 없다.

집이 곧 시다. '너'대신 사투리 '니'가 시가 몸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시에 눈떴던 40년대 '슬픔'에 대해 그 슬픔이 내것인 양 받아들인 것은 김광균 선생의 '환등(幻燈)'을 읽고 나서였다. 첫행은 '차단한 램프가 하나 호텔 우에 걸려 있다'였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곡 '위로'는 그 다음에 다가왔다. 허순위씨의 슬픔은 왠지 지독하고, 바람 든 무 같다고 제 몸(슬픔)을 빗댄다. '벼랑은 갑자기라는 말 같지?' 라고 그는 비명을 삼킨다. 그는 꽃을 든 의자왕(그런 임금은 지금 없다)을 기다리다 잠든다. 시에 몸판 여자는 천하지 않다. 사지를 우그러뜨려 껴안고 싶다.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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