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누리] 독집 앨범이 주는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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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여름이나 봄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가을이 되면 문득 오래된 LP나 CD더미를 뒤집니다.

오래 달리기를 막 끝낸 몸이 물과 당분을 애타게 찾듯, 갑자기 어떤 노래들이 몹시 듣고 싶어지는 겁니다.찾는 앨범이 얼른 눈에 띄면 다행이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집니다. 한참만에 꼭꼭 숨어있던 놈과 마주치면, 오레이!

잭슨 브라운의 '스테이', 보니 타일러의 '스트리트 오브 리틀 이탈리아', 봄여름가을겨울의 '못다한 이 마음을'등이 그런 노래입니다. LP의 먼지를 닦아 턴테이블에 올려놓거나, 출근길 차 안에 CD를 집어넣으면 음, 이제 가을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스테이'를 듣고 있으면, 먼 이국땅의 먼지 나는 시골 선술집 구석에서 혼자 식어버린 맥주를 마시는 기분입니다.

올해는 지난해 이맘 때 나온 주주클럽의 앨범도 찾았습니다. 세상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음반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몹시 마음에 듭니다.

특히 '마이 메모리'와 '견뎌야 하겠지'가. 주다인은 발랄한 창법도 좋지만 이런 노래에서 들려주는 차분한 보컬이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차 안에서 '마이 메모리'를 듣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독집 앨범을 사서 들어야 해. 히트곡들을 모아놓은 편집앨범만 사거나,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노래 한두곡만 내려받아 듣는다면 도대체 이런 노래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어.

그렇습니다. 싱글 커트도 안되고 라디오에서도 틀지 않지만 독집 앨범에 숨어있는 이런 좋은 곡들을 찾아 내는 것이야말로 음악 생활의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앨범을 구하기 어려운 노래들은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MP3 파일을 웨이브 파일로 바꾼 뒤 CD에 구워 듣기도 합니다만, 역시 원본 CD의 음질에는 한참 못미치더군요.

여유가 되시면 CD, 특히 1만원에 몇장씩 주는 편집앨범 말고 독집 앨범을 사서 듣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권해드립니다. 음반업계의 불황을 걱정해서가 아닙니다.

뮤지션들이 머리를 쥐어짜며 많은 돈을 들여 구현한 사운드와 음질을 만끽하자면, 그리고 세상에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너무 좋은 자기 만의 히트곡을 찾아 오래 간직하자면 그쪽이 낫지 않을까,라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노래의 추억이야말로 아무리 많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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