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주 봇물 … 경기 바닥 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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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현대중공업이 지난달에만 13억 달러 규모의 선박을 수주했다. 올 1분기 내내 해양 플랜트를 제외하고는 선박을 거의 수주하지 못했으나 4월 한 달 동안 한꺼번에 23척이나 수주한 것이다.

삼성중공업도 지난달에 전 세계적으로 처음 발주된 11만5000t급 유조선(아프라막스급) 9척 전량을 그리스 해운선사로부터 5억 달러에 수주했다. 이를 포함해 삼성중공업의 4월 수주액은 25억 달러를 넘어섰다.

국내 상위권 조선업체들의 선박 수주 행진이 이어지면서 조선경기 회복세가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세계 경기 회복으로 원자재 수송 수요가 늘며 해운시장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데다, 발주가 느는 것도 이런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선박금융 시장이 여전히 어려워 정상궤도에 진입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초 우려보다는 상황이 괜찮다”며 “내년에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4월 수주 회복=현대중공업은 3일 올해 조선해양 부문 수주 금액이 43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주 가뭄을 겪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2억2000만 달러)과 비교하면 대략 20배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4월엔 초대형 유조선(VLCC) 3척을 비롯해 LPG선·벌크선·자동차운반선 등 총 13억 달러 상당의 선박 23척을 수주했다. 올 들어 원통형 FPSO(부유식 원유저장생산설비) 등 주로 해양 플랜트 부문에서 수주해온 것과 달리 4월엔 선박 수주가 두드러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선박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들었다고 보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며 “그러나 지난해 상선 수주가 전무했던 데 비해 4월 선박 수주는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해운경기 살아난 게 호재=4월 상선 수주가 증가한 것은 해운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서 발틱운임지수(BDI) 등 각종 해운 운임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벌크선 운임을 나타내는 BDI 지수는 2009년 12월 3005에서 올 4월 3354로 상승했다. 원자재 수송 수요가 증가하면서 벌크선과 유조선 발주도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 세계 원유 수요가 금융위기 전보다 높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이런 전망대로라면 원유 운송 증가로 발주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해운경기가 살아나자 조선업체들은 물론 해운업체들도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 한국선주협회는 올 들어 일부 노선에서는 배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올 1분기 11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5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국내 주요 해운사들도 모두 흑자를 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관건은 선박금융이 활성화되느냐다. 선박 발주와 중고 선박 매입에 필요한 자금의 70~80%를 차지하는 선박금융은 2008년 3분기 이후 줄곧 침체 상태다. 지난해 전 세계 선박금융 규모는 33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0% 이상 줄었다. 올 1분기도 61억 달러 수준으로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STX 이종철 부회장은 “이번 불황으로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 우려를 털어버린 데다 중국 업체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며 “군소 업체들은 당분간 더 어렵겠지만 국내 상위 조선사들에게는 오히려 기회”라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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