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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그리스 구제금융 열쇠 쥔 메르켈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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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독일판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 (사진)독일 총리의 별칭이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졌다. 둘 다 과감한 개혁으로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배짱도 닮았다. 1984년 대처는 경제가 어려워졌으니 유럽연합(EU)에 냈던 분담금을 돌려달라며 EU를 압박해 돈을 돌려받았다. 선진국으로서 체면 생각을 할 만한데 그는 밀어붙였다.

메르켈은 그리스 구제금융에서 배짱을 튕겼다. 온 유럽이 그리스 문제로 전전긍긍할 때 그는 “그리스의 자구 노력이 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스는 물론이고 전 유럽이 그의 눈치를 봤다.

곡절 끝에 그리스에 1100억 유로를 지원하는 안이 2일 마련됐다. 7일 유로존 정상회의의 승인만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유럽 언론은 구제금융의 마지막 관문은 유로 정상회의가 아니라 같은 날 있을 독일 의회 표결이라고 여긴다. 독일은 유로존 국가 중 가장 많은 224억 유로(28%)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만만치 않다. 독일 여론은 그리스에 호의적이지 않다. “섬을 팔아서 빚을 갚아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의회 표결 이틀 후 지방선거가 있다. 유럽의 운명이라는 대의는 멀고, 선거 승리라는 실리는 가깝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파국을 막으려면 반드시 메르켈이 구제금융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와 유럽의 운명이 다시 메르켈의 손에 온 것이다.

메르켈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그가 버티는 바람에 그리스 위기가 심화됐고, 이 바람에 200억~300억 유로면 충분했을 지원이 1100억 유로로 늘어났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았다는 비난이다. 국내 정치에 발목이 묶인 ‘작은 지도자’라는 혹평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버텨 준 덕에 유로존의 ‘도덕적 해이’를 막았다는 평가도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3%가 넘는 문제아인 그리스가, 4년 후에 우등생(3%)이 되겠다고 약속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준 이상이다. 다음 주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포르투갈·스페인에도 본때를 보여줬다.

정치적인 득실도 갈린다. 그리스 구제금융은 유로존의 합의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상은 메르켈이 동의하느냐 마느냐에 따랐다. 조마조마했던 금융시장은 “그리스 지원만이 유로화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2일 그의 발언이 나오자 안도했다.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주도권은 확실히 그가 쥔 것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구제금융을 받아들였다. 늦은 동의가 의도된 것인지, 밀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또 다른 비판에 직면한 것만은 분명하다. 독일 국내의 비판이다. 야당은 이미 “우리가 왜 초호화판 그리스 리조트에 돈을 대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9일 라인-웨스트팔리아주 상원의원 선거는 메르켈에게도 중요하다. 메르켈이 추진해 온 개혁 정책의 안정적 추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재정정책을 상원에서 주로 다룬다.

메르켈은 의회를 설득할 명분도 찾은 듯하다. 그는 2일 “그리스가 빚을 갚으면 돈을 빌려주는 독일의 국영은행은 오히려 돈을 벌게 된다”고 말했다. 잘만 되면 그리스 구제금융이 독일에 돈벌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메르켈이 국내에서도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그는 나라 안팎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철의 여인’이 표를 쥔 독일 국민 앞에서 물렁해진다면, 시장은 다시 요동치고 메르켈은 유로의 공적이 될 수도 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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