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바뀌었어!".
예비 신랑 안정이 안지에게 던지는 한마디다. 뭐가 바뀌었다는 걸까. 안정의 운동화는 예쁜데, 안지의 운동화는 편하다.
안정은 어두운 골목길을 피해가고,안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안정의 향수는 아홉 개고,안지의 향수는 두 개다.
우리는 고정적인 남녀의 역할에 있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적지 않게 뒤바뀌어 있다. 결혼하고 나면 다시 변할까? 연애 시절 자상한 남편이 되리라 몇 번이고 다짐한 남자들조차 결혼을 하고 나면 전형적인 '한국 남편'의 모습이 된다.
글쎄. 장담할 수 없지만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게 안지의 예상이다.
집안 얘기나 아이 얘기에서 안정의 관심도나 발언 횟수가 안지의 그것에 못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안정은 끊임없이 안지에게 가정 일에 대해 묻고 상의할 것이며,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쇼핑도 할 것이다. 안지는 그런 '작은(?)' 안정의 모습에서 늘 고마움과 든든함을 느낀다.
보통 남자들은 아내에게서 집안 구석구석,요모조모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TV 볼륨을 높이거나 애꿎은 리모콘만 정신없이 눌러댄다고 한다. 그런 남자들의 반응에 한두번 질리게 된 여자들은 이내 그런 '작은 대화와 관심'에 대한 기대를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남자의 무관심에 서운해하고 있는 여자들이라면 남자들에게 집안에서의 역할을 좀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건 어떨까.남자들을 조금씩 집안으로 이끌고 그와 정겨운 '작은 얘기'들을 나눠보자.
전구 스탠드.할인 매장.고장난 세탁기.올 가을 유행 패션 등 대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이 모든 동참을 좀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는 남자들이여! 당신들의 차갑고 무겁고 심드렁한 장벽을 서서히 무너뜨려 보자.'작은 것'부터 함께 해 보자. 많이 함께 하면,많이 이해할 수 있고 많이 사랑할 수 있다.
가끔은 서로의 역할을 바꾸기도 하면서 작은 것들에, 그리고 서로에게 좀 더 귀 기울여보자.
자유기고가
▶안정(34세. 프리랜서 글쟁이. 안정은 필명. 안지의 예비 남편. 한달 후 결혼 예정)
▶안지(29세. 시나리오 작가 준비생. 안지는 필명. 안정의 예비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