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 지도] 현단계 문화연구의 지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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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버밍엄 학파'. 스튜어트 홀이 현대문화연구소를 이끌던 시절을 일컫는 표현이지만, 지금은 거의 실제적 내용을 갖지 못한다.

당시 연구소에 참여했던 연구자들은 이후 영국.미국.호주.캐나다 등지로 흩어져 저마다 처한 정치적 문화적 국면에 맞추어 다양한 토픽을 다루고 있는데, 폴 윌리스.딕 헵디지.안젤라 맥로비.이언 챔버스.폴 길로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홀의 업적을 재조명하며 그가 미친 영향을 분석.평가하는 앤솔로지 『보증 없이』(2000)를 펴낸 바 있다.

1990년대 이후 문화연구는 미국에서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외관상으로는 단연 미국이 가장 활발하다. 문학.철학.사회학.과학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문화연구의 전문 용어가 붐을 이루고 있지만, 레이건-부시 시대 미국 대학가에서 분출했던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 논쟁을 거치며 신우파 세력의 공세 앞에 상당한 시련을 겪고 있다.

현재 미국의 문화연구를 진취적으로 선도하는 이들로는 그로스버그.코넬 웨스트.헨리 지루.웬디 브라운 등이 있으며 『문화비평』『뉴 포메이션』『소셜 텍스트』 같은 저널은 정규적으로 문화연구 관련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문화연구는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기본적인 특징은 그간 유럽 중심의 문화연구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때 단연 주목할 만한 연구자가 대만 칭화(淸華)대의 문화연구소 소장 천광싱이다.

그는 서구 문화연구의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아시아 내부로 시선을 돌려 '문화연구의 아시아적 길'을 찾기에 분주하다. 이에 대한 정보로는 『궤적(Trajectories)』(1997)이라는 단행본을 참조할 수 있다.

우리 지식사회에서 문화연구가 부각된 지는 10년 남짓하다. 흐름에 이론적 물꼬를 튼 연구자들로는 조혜정(연세대).강명구(서울대).강내희(중앙대).신병헌(홍익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문화과학』을 비롯해 문화연구 관련 저널들이 속속 등장할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너른 편이다. 다만 우리의 경우 그것이 아직은 개별 학문의 칸막이 틀 내에 하나의 메타 이론으로 연구되는 경향이 강하며, 특히 눈에 보이는 미디어 문화에만 치중할 뿐 노동자문화 같은 영역에는 시선이 가 닿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김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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