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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 미국·영국 1차대전 이래 모든 전쟁 함께 치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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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보라,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쓴다. 말 속에 숨은 속뜻도 척척 안다. 우리끼리는 통하는 것이다." 1970년대 영국 총리 윌슨은 이렇게 미.영 관계의 친연성을 표현한 바 있다.

미국과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통해 또 한번 생사를 같이 하는 맹방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영국은 이번 공격에서 현재까지 유일한 군사작전 참여국이다.

이처럼 탄탄한 관계는 양국의 외교적 이해가 일치한 때문이지만 인종적.문화적 친밀성에 1차적 뿌리가 있다. 특히 말이 통한다는 점 때문에 군사작전에서 미국의 영국 선호는 절대적이다. 두 나라의 밀월은 미국이 국가통합과 세력확대를 위해 두차례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비롯된다. 그 이후 영국은 미국이 주도한 모든 전쟁에서 함께였다. 영국은 한국전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했고 전세계가 반대했던 베트남전에도 상징적이지만 군대(6명의 의장대)를 보내줬다.

미국은 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영국에 위성정보를 제공, 보은했고 영국은 91년 걸프전에 연합군 중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 다시 빚을 갚았다.

클린턴 시절엔 양국 정상이 학연(옥스퍼드대 동창)으로 얽혀 더욱 끈끈해졌다. 97년 클린턴은 동창 블레어가 출마하자 자신의 선거참모를 보내 전략을 전수해줬다. 총리에 당선된 블레어는 그해 이라크 사태에서 유럽의 지지를 얻지 못해 고립된 미국을 위해 항공모함을 파견했다.

미.영 관계에 균열이 생긴 적도 없지는 않다. 56년 영국의 수에즈운하 사태 개입 당시 아이젠하워가 도와주지 않아 서먹해진 적이 있고, 아일랜드공화군(IRA)처리 문제 등에서 양국이 대립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케네디와 맥밀런, 레이건과 대처, 클린턴과 블레어 등 '버디(단짝)'같은 양국 정상들의 신뢰관계가 이내 틈을 메워왔다.

하지만 이처럼 끈끈한 미.영 관계는 앵글로 색슨 문화가 주도하는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측면도 강하다. 때문에 제3세계나 유럽 대륙 국가들로부터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이번 영국의 적극적 동조는 블레어 총리의 개인적 이상론과도 관련된다. 그는 연설을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꾸밀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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