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리뷰] 장영주·도밍고 '불과 얼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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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카르멘 환상곡'을 처음 녹음한 것은 아홉살 때. EMI 데뷔음반에서 4분의 1 크기의 꼬마 바이올린을 들고 피아노 반주로 연주했다.

이번에는 풀 사이즈 과르네리 바이올린으로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 녹음이다.

10년 전의 연주가 깜찍한 느낌을 준다면 이번 녹음은 한층 농염하고 풍만한 음색으로 카르멘을 연기해낸다.

최근 오페라 무대에서 심심찮게 지휘봉을 잡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녹음을 듣노라면 마치 오페라 극장에 와 있는 기분이다. 표현력과 템포의 유연성이 돋보이며 호흡과 흐름이 한결 여유롭다.

새 음반의 제목은'불과 얼음'.'카르멘 환상곡'을 비롯, 라벨의'치간',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등 집시풍의 정열을 담은 곡에선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불꽃튀는 기교로 후끈 달아오르다가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 드보르자크와 베토벤의'로망스', 바흐의'G선상의 아리아'등에선 차분하게 냉정을 되찾는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린 맛이랄까.

개인기를 앞세우기 좋아하는 베를린필도 이번 녹음에선 도밍고의 풍부한 표정 지휘 때문인지 유난히 부드럽고 나긋나긋해졌다.

소품집은 '심플리 사라'(97년)에 이어 세번째. 오케스트라 반주로는 첫 음반이다.

'카르멘 환상곡'을 제외하면 겹치는 곡도 없다. 장영주는 쿠르트 마주어 지휘의 런던필하모닉과의 협연(24~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들려준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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