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 고려인’ 도울 길 열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옛 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무국적 고려인’의 국적 취득을 돕는 특별법이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했다. 무국적 고려인이란 ‘현재 살고 있는 나라의 국적을 갖고 있지 못한 고려인’을 의미한다.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이범관(한나라당) 의원은 2일 “고려인에 대해 외교적·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처음 마련됐다”고 밝혔다.

특별법에는 ▶무국적 고려인 지원을 위한 정책을 수립·시행하고 ▶매년 국회에 추진 현황을 보고서로 제출하며 ▶고려인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경제적 자립을 돕고 ▶한인문화센터를 설립해 한국어·IT 교육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본지는 지난해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무국적 고려인 시리즈(3회)’를 보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옛 소련 지역 4개국 현지 취재를 통해 고려인의 삶을 재조명했다.

<본지 2009년 6월 25일 1면>

19세기 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많은 한민족이 연해주로 이주했다. 경제적 문제와 ‘독립운동’이라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1937년 소련의 스탈린 정부는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 명 모두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고려인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농사를 잘 짓고, 교육열이 높아 문맹률이 낮은 민족’으로 인정받으며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고려인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 다른 국가에 살게 됐다. 이때 소련 국적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국적으로 전환하지 못한 ‘무국적 고려인’이 5만 명으로 추정된다. 현재 전체 고려인의 숫자는 53만 명 정도다. 고려인의 10% 정도가 국적이 없어 최소한의 교육·의료 혜택도 못 받고 있다.

옛 소련 지역에 살던 이스라엘과 독일의 해외교민도 고려인과 비슷한 일을 당했다. 이들 나라는 자국민들을 본국으로 데려가거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한국은 국가 차원의 지원을 펴오지 못했다.

본지 기사가 보도된 뒤 정부는 전면적인 실태 조사를 약속했다. 외교부 신각수 차관은 “고려인 국적 문제는 한국의 역사적 비극에 대한 자아성찰과 같다”고 말했다.

이범관 의원을 비롯해 국회의원 22명은 지난해 11월 무국적 고려인의 국적 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공동발의했다.

강인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