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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선거도 무산 … 총학생회장 못 뽑는 서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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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9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던 서울대 총학생회가 각종 비리와 학생들의 외면으로 흔들리고 있다.

2일 서울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부터 29일까지 실시된 총학생회장 재선거에 총 유권자 1만6640명 중 49.6%(8254명)가 참여했다. 개표 조건인 투표율 50%에 미치지 못해 선거가 자동으로 무산된 것이다.

문제는 49.6%라는 투표율마저 연장투표와 재선거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것이란 점이다. 원래 제53대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는 지난해 11월 끝났어야 했다. 그때도 투표율이 워낙 저조해 연장투표를 한 끝에 겨우 투표함을 봉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선거캠프에서 총학 선거관리위원장이 선거가 끝나기 전에 투표함을 열어봤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증거물로 도청 테이프까지 공개했다.

이 때문에 12월에 다시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투표율이 41%에 그쳐 선거가 무산됐다. 그리고 올 4월 재선거에 연장투표까지 했지만 또다시 무산된 것이다.

그러자 일부 선거캠프는 총학 선관위에 선거명부를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투표 마감일 다음 날인 4월 30일을 기준으로 휴학생 200여 명을 제외시키면 투표율이 50%를 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선관위는 “휴학생을 유권자에서 제외하면 4월 19일 이후 휴학한 일부 후보의 피선거권 역시 박탈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이에 각 선거캠프는 선관위를 ‘선거 무산 세력’이라고 비난했고, 선관위원 절반 이상이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스누라이프’에는 “선거를 시작하기 전에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를 확정하는 게 민주주의의 상식 아닌가”라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대 총학 선거의 투표율 저조 문제로 2000년대 들어 억지로 총학을 구성한 것은 다반사였다. 2006년 6월 황라열 당시 총학생회장이 경력조작 의혹 등으로 탄핵당했다. 총학 간부가 구내식당 식권을 위조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총학생회를 둘러싼 문제는 서울대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엔 서강대 총학이 선거 과정에서의 절차적 적법성 문제로 퇴출당했다. 성균관대에서는 두 후보가 성추행 의혹과 경고 누적으로 후보 자격을 상실해 재등록을 받았다. 이화여대에서도 자격 박탈과 자진 사퇴가 이어졌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순수하게 학생복지를 위해 일해야 할 사람들이 총학을 이념도구화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기성 정치권을 답습하는 행태를 보이는 한 일반 학생들은 총학에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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