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0월 7일의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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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0월 7일(한국시간 8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작전을 개시함으로써 미국이 21세기의 첫 번째 전쟁으로 상정한 '대 테러리즘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전통적인 전쟁과 그 시작도 다르고 전개 과정도 다르며 끝나는 모습도 다를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개전(開戰) 성명에 언급돼 있듯이 10월 7일의 공격은 앞으로 전개될 '지속적이고 포괄적이며, 가차없는(sustained,comprehensive and relentless) 작전'을 위한 전초작업에 불과한 것이다.

***지속.포괄…가차없는 작전

거의 한달 가까이 (테러 이후 26일 경과) 예상됐던 전쟁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볼 때 1차 공격에 동원된 폭격기와 토마호크 미사일 등은 소규모의 군사력이지만 이는 앞으로 미국이 수행할 전쟁의 방식을 시사해준다.

우선 미국은 걸프전쟁의 경우처럼 공군력 위주의 대규모 폭격전략 대신 그동안 자세히 관찰해 두었던 표적들을 향해 우선 단계별 정밀폭격을 가한 후 특수전용 지상부대를 투입할 계획이다.미국은 우선 1차 공격 대상으로 테러리스트들의 기지와 그들의 통신망을 먼저 제거하려 했으며 테러조직을 비호하는 탈레반 정권의 국방부, 즉 전쟁 지휘부를 공격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전략이 있어야 하며 훌륭한 전략이란 적(국)의 '힘의 중심(Center of Gravity)'을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걸프전 당시 미국은 막강한 공화국 수비대를 이라크의 '힘의 중심'이라고 간주하고 이를 거의 완벽하게 파괴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이라크의 건재를 본 미국은 이라크와 같은 독재국가의 힘의 중심은 군사력이라기보다 그 나라의 지도자(후세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미국은 이제 테러 조직의 지휘부,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 및 그 지도자를 공격의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전쟁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미국식 전쟁 방식은 아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가와 그 나라의 국민, 그리고 이슬람교도들과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제공할 식량.의약품 등 생활 필수품들을 대량 공중 살포하는 작전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서는 오사마 빈 라덴은 폭격 개시 후 사전에 녹화해 두었던 비디오를 방영했다. 환상적이기는 하나 논리적이지 못한 빈 라덴의 언급은 예상대로 이 전쟁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슬람과 서구의 전쟁으로 몰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빈 라덴은 1백만명의 죄없는 이라크 어린이들이 죽고 있다는 말로서 이라크를 부추기는 한편 이스라엘의 탱크가 팔레스타인을 유린하고 있다고 말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부추기려 한다.

이슬람이 80년 동안 박해를 받았다고 강조해 이스라엘을 자극하고 있다. 빈 라덴이 모호하게 말한 80년이란 이스라엘의 건국을 약속했던 발포어 선언(1917)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경과된 시간을 개략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빈 라덴은 이스라엘의 건국 및 존재 그 자체를 이슬람이 당하는 고통의 근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개입 막는 미국

사실 미국의 고민 중 하나는 이스라엘을 여하히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느냐에 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개입하는 경우 미국의 대 테러전쟁을 지지하는 아랍권의 분위기는 돌변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빈 라덴이 원하는 이슬람과 서구의 '문명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분을 삭이며 국민들을 전시 체제로 동원했다. '미국은 장기적인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근간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미국 국민은 놀라운 단결력과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전 세계의 모든 강대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외교적 노력도 병행했다.

'지속적이고 포괄적이고 가차없는 작전'이 시작됨으로써 '탈냉전시대'라는 이름 아닌 이름으로 지칭되던 국제정치사의 한 시대는 종막을 고하고 있다. 국제정치의 작동 원리가 지난 시대와는 판이하고 격랑의 시대가 될 것임이 분명한 앞으로의 세상에 대비, 우리 역시 정교하고 현실적인 전략의 수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李春根(政博.美오하이오대 박사과정.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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