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에즈라 파운드 '소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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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나무가 내 손에 들어왔다

수액이 내 팔로 올라갔다

나무가 내 가슴에 자랐다

아래로,

가지가 밖으로 자랐다,팔처럼.

나무다 너는

이끼다 너는,

너는 바람이 머무는 오랑캐꽃.

그렇게도 귀한 아이다 너는,

하나 세상 사람에겐 이것은 죄다 실없는 수작일 뿐.

-에즈라 파운드(1885~1972) '소녀'

땅 속에서 빨아 올린 수액(樹液)은 나무의 양분이 된다.나무는 소녀의 눈부신 몸이고,수액은 가슴과 팔에 오르내린다.

순결은 소녀를 상징하는 팔.나무.이끼(하체)로 은유된다.바람이 그곳에 머물다 떠나면 소녀의 수치(羞恥)는 이름 모를 죄가 된다. 에즈라 파운드는 이미지스트였다.지하철 군중을 '젖은 꽃잎'으로 비유했듯.수액을 빨아 올리는 요즘 10대 나무들도 겉늙지 말기를.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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