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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뒤통수만 얻어맞는 대일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러시아와 일본이 내년부터 남쿠릴 열도 주변수역에서 한국 등 제3국의 조업을 금지하기로 잠정합의했다고 일본 언론이 그제 일제히 보도했다.

보도대로라면 우리나라 전체 꽁치 수급량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남쿠릴 열도 어장이 당장 내년부터 꼼짝없이 날아갈 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실 확인조차 못한 채 그럴 리 없다는 한심한 소리나 하고 있으니 정부의 정보력 부재와 안이한 태도에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렇잖아도 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당장 일이라도 낼 것처럼 기세를 올리던 입장에서 슬그머니 물러나 일본 총리의 방한을 허용해준 데 대해 국민감정이 들끓고 있는 터에 느닷없이 엉뚱한 문제로 뒤통수까지 얻어맞은 꼴이다.

알려진 대로 남쿠릴 열도 주변수역은 일본과 러시아가 영유권을 놓고 다투는 분쟁수역이다. 하지만 실효적 관할권은 러시아가 행사하고 있고, 우리는 러시아에 입어료를 내고 1999년부터 매년 이 수역에서 1만5천t 가량의 꽁치를 어획해 왔다.

일본이 이를 문제삼아 일 산리쿠(三陸)해역 내 우리 어선의 꽁치잡이 조업 허가를 내주지 않음으로써 한.일 어업협정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끽소리도 못하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넋놓고 있다가 남쿠릴 열도 어장마저 잃게 생겼으니 어민들은 도대체 누굴 믿으라는 소린가.

돈을 퍼주고라도 제3국의 조업을 금지함으로써 남쿠릴 열도를 분쟁수역으로 남겨두겠다는 일본의 집요한 계산 가능성에 대비해 러시아와의 외교에서 협상력을 발휘했더라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당하는 이런 사태는 최소한 피할 수 있었다.

우리는 러시아와 일본의 영유권 분쟁에는 관심이 없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엉뚱하게 우리가 피해를 보게 생겼으니 문제다. 이런 일에 대비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이다.

러시아.일본간 합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부는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일본으로부터 상응하는 대체어장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뒤통수나 얻어맞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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