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권력 입맛대로 공무원 인사 안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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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06년부터 1~3급 실.국장급은 개인별 계급이 없어지고 직무의 경중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 고위 공무원단 제도가 실시된다. 3급 부이사관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1급이 맡던 차관보나 기획관리실장에 임명될 수 있다.

차례차례 계단을 오르듯 서열구조로 돼 있는 현행 제도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위 공무원의 연공 서열이 파괴되고 오로지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게 된다. 능력을 중시하고 상호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자는 목적이다. 민간 기업에서는 서열을 파괴하고 능력과 성과를 최우선시하는 인사제도를 채택해온 지 이미 오래다.

새 제도는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복지부동이라며 지탄받던 공직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자극을 줄 수 있다. 능력과 무관하게 서열에 따라 자리를 맡고 정년이 되도록 여러 보직을 거치는 철밥통 구조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경쟁이 도입되고 전문성과 업무성과가 중시되는 풍토로 바뀔 수 있다. 이는 새 제도가 내세우는 장점이 그대로 실현될 경우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잘못 운영되면 공무원 사회가 혼란에 빠질 위험도 있다. 1급에서 3급까지 통틀어 능력에 따라 운영한다는 명분하에 공무원 인사가 정치바람에 휩쓸릴 위험도 높다. 현행 고위 공무원의 인사 실태를 보면 5년 주기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실력과 능력보다는 학연과 지연, 권력연에 따른 인사가 많았다. 그나마 서열이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의 인사는 못했는데 이제는 국장급이 되면 정권 마음대로 인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 제도가 정착하려면 평가시스템이 공정하게 운영돼야 한다. 공무원의 자질과 능력, 성과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하고 적절한 보직에 배치하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이 시스템은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대통령조차 간섭할 수 없는 독립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 제도는 실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