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반이스라엘' 소용돌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슬라마바드=김석환 특파원]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설득하려는 파키스탄측의 노력이 다시 무위로 돌아간 가운데 파키스탄에선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시위가 다시 격화하고 있다.

지난 11일의 항공기 돌진 테러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이슬람권에 뒤집어씌우려고 벌인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파키스탄 전역에 퍼지고 있어 미국에 협조하고 있는 정부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28일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파키스탄 주재 유엔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인 수천명의 이슬람 학생들은 "(테러는)유대인이 했다" "틀림없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 학생은 트럭 지붕 위에 올라서서 이런 유언비어를 사실인 양 보도한 현지 신문을 펼치며 "모든 신문이 다 그렇다고 썼다. 유대인이 해놓고 무슬림(이슬람교도)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고 있다" 고 외쳤다.

그러자 격앙된 시위대는 "미국은 물러나라. 이스라엘은 사라져라" 는 구호를 외치며 준비한 성조기와 미국을 상징하는 실크모자를 쓴 인형을 불태웠다.

시위에 참가한 알리라는 청년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근무하던 4천여명의 유대인들은 미리 전화로 당일 결근하든지 지각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미 중앙정보국(CIA).연방수사국(FBI)이 이를 조사하고 있다" 는 기사 내용을 소개했다.

현지의 한 유력 언론인은 "일부 신문들이 근거없는 내용을 보도해 유언비어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며 "중동 일부 국가에서 만들어진 루머가 e-메일 등을 통해 퍼진 것으로 짐작된다" 고 말했다.

실제로는 1백여명의 이스라엘 국적자를 포함해 유대인 수백명이 세계무역센터에서 실종됐지만 파키스탄 언론들은 이런 내용은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 등 소문을 은근히 부추기는 분위기다.

이날 아프가니스탄과 가까운 페샤와르와 중부도시 사르고드 등 지방도시에선 1백만명에 가까운 시위대가 도심을 몇시간 동안 점거한 채 격렬한 반미시위를 벌였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참가자들은 "빈 라덴은 영웅" "미국을 몰아내자" 등 기존의 구호 이외에 유대인을 비난하는 구호도 함께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다행히 폭력사태는 없었지만 시위는 험악한 분위기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도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