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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에 진 영혼의 빚 음반으로 갚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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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노동 속에 문드러져/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20년 전 발간된 박노해 시인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지문을 부른다'를 읽으며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던 그 시절 젊은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세상이 좋아진 덕에 '서류를 만드느라, 아부를 하느라 지문이 닳을 지경'이라며 엄살을 피우는 평범한 생활인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그라졌던 열정의 잿더미를 들쑤셔 불씨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 헌정 음반과 공연 제작 발표회'. 17일 서울 신문로 '나눔문화' 사무실에서 열렸다. 처음 헌정 음반을 내자고 제안한 건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노동의 새벽'은 80년대 문화사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단일 시집으로는 가장 많은 시(아홉편)가 노래로 불린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음반에 기록되지 않았지요. 그 시대 정신을 오늘에 맞게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노동자가 시인이 돼 현장의 일상을 투박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낸 시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노동의 새벽'은 8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LJ필름 대표 이승재, 도서출판 '느린걸음' 대표 강무성,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교수, 건축가 김영준, 법륜 스님 등이 이번 사업 추진위원단을 구성했다. 정작 박노해 시인은 당초 이 사업을 반대했다고. 그러나 '이미 시인 개인의 손을 떠난 시집'이라는 데 동의해 결국 음반 작업을 도왔다.

음반에는 '노동의 새벽'에 실린 14편, 박노해 시인이 새로 쓴 2편의 시가 노래로 태어난다.

록의 대부 한대수, 장사익.정태춘.윤선애.노래패 억새풀 등 민중 가요 뮤지션, 국악인 황병기 교수, 싸이.언니네이발관.윤도현.Ynot(와이낫) 등이 참여한다.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이 '시다의 꿈'을 부른다.

음반 프로듀싱을 맡은 신해철은 "시인의 색깔을 중심축으로 삼아 뮤지션들이 개성을 최대한 살리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달 말 발매되는 음반과 다음달 10일 오후 7시30분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공연 '스무살 공순이의 노래' 수익금은 전액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쓰인다. 영화배우 조재현도 "'노동의 새벽'을 잘 몰랐지만 헌정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만지고 바라보는 세계가 좋아" 공연 사회를 보기로 했다. 절판됐던 시집은 도서출판 '느린걸음'에서 다시 펴낸다. 02-6083-1978.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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