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현지 표정] "아프간 2주후면 식량 바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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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러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다 굶어 죽게 될까 걱정된다. "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소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사무소에서 만난 한 관리는 17일 수심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틀 전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서 대피했다는 그는 "아프간에는 국제 원조에 의지하는 주민이 5백만명이나 되는데 비축된 식량은 2주만 지나면 바닥이 난다" 며 한숨을 쉬었다.

공식적으로는 17일의 '외부 물자 반입을 일절 금지하는' 경제봉쇄 명령 탓이지만 실제로는 15일부터 보리 등 식량 수송 루트가 완전히 차단됐기 때문이다.

토르크햄 국경 검문소를 통해 이슬라마바드로 왔다는 밀라잔(35)도 "곧 공습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카불엔 공포감이 번지고 있다" 며 "그러나 파키스탄으로 넘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나같이 이곳에 친지가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 이라고 말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국경 검문소가 있는 토르크햄에서 동쪽으로 60㎞ 떨어진 페샤와르. 파키스탄 최대의 국경도시인 이곳에서는 이렇다할 동요가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 시민들은 15일 특수 정예요원 50명을 비롯한 2백여명의 미 지상군이 도착했다는 보도도 모르고 있었다. 노점상들은 손님 끌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리에서 소.돼지를 실은 트럭들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평화롭고 평범한 시골 도시였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리는 오사마 빈 라덴 지지 시위도 이곳에선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국경 상황은 달라 국경 검문소인 토르크햄 진입은 원천 봉쇄됐다.

국경 근처 난민 캠프의 무하마드 자비르시(47)는 "아프간에서 꼬박 사흘을 걸어 이곳에 왔지만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며 눈물을 흘렸다.

'미국과의 협조' 때문에 아프간과의 국경을 막고 식량 지원마저 막아버리자 파키스탄 내부에서는 "정부가 너무 하는 것 아니냐" 는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토르크햄에 사는 파키스탄인 자비르시는 "아프간과 우리는 형제" 라며 언성을 높였다. 압둘 사타르 파키스탄 외무장관이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유엔이 결의한 반 테러 선언에 기초해 미국과 협력하는 것이며 미국의 특별 지원이나 압력 때문은 아니다" 고 말한 것은 이런 반발을 의식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슬라마바드.페샤와르.토르크햄=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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