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수명 늘리자] 1. 한국인 어떤 질병에 약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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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급속한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건강 성적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에 몰두하는 사이에 정작 중요한 국민의 건강은 경시돼 왔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간 평균수명 5년, 건강수명 9년 이상의 차이는 또다른 국치(國恥)나 다름없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본지는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와 함께 열악한 국내 보건수준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매주 1회 기획기사로 '건강수명 5년 늘리기' 를 시작한다.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긴다' .

한국인의 건강 수명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들을 알아야 한다. 이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건강지표가 '연령별 질병 부담률' 이다.

질병 부담률이란 질병의 빈도와 위중도.치료비 등을 감안해 질병별로 국민들에게 부담이 되는 정도를 백분율로 산출한 것. 감기는 흔하지만 쉽게 낫는 병이고, 광견병은 위중한 병이지만 드문 병이므로 두 병 모두 질병부담률이 낮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세대별로 어떤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까. 인하대의대 홍재웅 교수와 서울대의대 안윤옥 교수팀이 보건복지부의 연구비 지원으로 한국인의 질병부담률을 조사한 결과 어린이는 천식, 청.장년은 간염, 노년은 뇌졸중을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0~4세와 5~14세 어린이에선 천식의 질병부담률이 각각 41%와 48%로 1위였다.

15~24세, 25~34세, 35~44세, 45~54세 청.장년에선 간염이 14~30%로 1위, 55~64세, 65세 이상 노년층에선 뇌졸중(腦卒中)이 12~24%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정신분열증이 15~34세에 부담이 큰 질환이어서 눈에 띈다. 전체적으론 전 연령별로 고루 상위권에 오른 간염이 우리 국민들이 가장 신경써야 할 질병부담률 1위 질환으로 밝혀졌다.

B형과 C형 등 간염은 국내 성인의 10%에서 혈액 중 바이러스가 발견될 정도로 흔한 국민병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감염자는 비감염자에 비해 간경변이나 간암에 걸릴 확률이 1백배나 높다. 간암의 경우 치료도 어렵지만 간 이식 수술을 받을 경우 최소 1억원 이상 비용이 든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양봉민 교수가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이 간염으로 치르는 비용만도 연간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염 검사에서 음성인 사람은 반드시 예방접종(B형간염)을 해야 하며, 산모가 보균자인 경우 자녀의 감염을 막기 위해선 출산후 아기에게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놓아야 한다.

천식은 국내 어린이의 13%가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 한번의 치료로 완치되지 않는 만성질환이기도 하다.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안강모 교수는 "아파트 등 밀폐형 주거공간의 확산으로 어린이가 집먼지진드기에 노출될 기회가 많고 대기오염의 악화로 어린이 천식환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고 말했다.

문제는 기침이 잦은 어린이를 감기로 오인해 조기 치료 기회를 놓친다는 것. 서울대의대 내과 김유영 교수는 "흡입 분무제 등으로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염증이 악화돼 성인 천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고 말했다.

55세 이상 노년에선 뇌졸중이 간염을 제치고 1위로 올라온다. 뇌졸중이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생기는 질환. 해마다 4만여명이 뇌졸중으로 숨진다.

생명을 건진 경우에도 반신불수 등으로 여생을 불구의 몸으로 지내야 한다. 고혈압.흡연 등 생활 속에서 뇌졸중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책. 혈압약 복용과 금연만으로 뇌졸중 발생률이 서너배 이상 감소한다.

서울중앙병원 신경과 김종성 교수는 "갑자기 눈이 잘 안보이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손놀림이 익숙지 않은 증상이 수분간 나타났다 사라지면 나중에 본격적인 뇌졸중이 올 수 있으므로 빨리 병원을 찾아 혈전 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고 충고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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