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간리뷰] '관용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관용' 이란 말은 홍세화씨가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창작과비평사)에서 언급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배척하지 않으려는 프랑스 사회의 지성적 분위기를 '똘레랑스' 라는 낯선 용어로 소개한 점이 정치적 신념이 달라 쓸쓸한 망명객으로 살아가는 그의 내면 고백과 어울려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기본적 흐름인 이 관용의 정신은 20세기 초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 과도 맥락이 연결되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간 『관용론』에 가닿는다.

저자 볼테르(1694~1778)는 『관용론』을 통해 18세기 유럽의 전제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치열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 점이 동시대를 산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적 성취에는 못미치지만 볼테르를 계몽주의 시대를 가장 리얼하게 증언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로 손꼽게 하는 이유다.

볼테르가 이 책을 쓰게 된 모티브는 종교적 광신의 문제다.

그러나 탈이념시대 민족과 종교의 충돌은 물론이고 일상적 삶에 잠복한 내면의 파시즘 문제를 고민하는 오늘의 시점에 더 적실하게 읽힌다.

이 책의 요지는 한마디로 인간정신의 자유에 대한 옹호다. 종교적 편견에 저항하며 관용을 호소하는 이 책은 1762년 일어난 '칼라스 사건' 을 계기로 쓰여졌다. 이 책엔 칼라스 사건의 전모와 끝내 무죄판결을 이끌어내기까지 볼테르의 활약상이 그려진다.

당시 프랑스는 신교와 가톨릭 사이에 광신적 대립이 벌어지고 있었다.

68세의 상인 칼라스는 신교도로서 종교적 맹신에서 한 걸음 떨어진 평온한 삶을 살았으나 그의 큰아들의 자살과 관련해 모함을 받고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죽이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진다. 변호사가 되고자 했던 그의 아들은 신교도라는 이유로 그 꿈이 좌절되자 비관에 빠져 자살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보려 몰려든 군중들 가운데 누군가 칼라스의 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했기 때문에 가족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소리쳤고, 이 근거없는 소문은 맹신적이고 신교도에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로 퍼져갔으며, 들뜬 여론에 격앙된 관리는 아무 증거도 없이 칼라스 가족을 체포했다. 재판 결과 칼라스는 극형에 처해졌다.

볼테르는 묻는다. "광신에 눈이 멀어 죄를 범한 쪽은 재판관들인가 아니면 피고인가□" 그의 결론은 이렇다. "종교는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리고 죽은 후에도 행복해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세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

그런데 문명과 이성의 미명 아래 전개된 야만의 20세기를 경험한 인류는 볼테르의 합리적 이성에 회의의 시선을 던지기도 하는 오늘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이성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합리화와 더불어 관용의 정신이 뒷받침돼야 함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