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량의 월드워치] 빈 라덴의 증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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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자하다' 는 아랍어로 분투(奮鬪)라는 뜻이다. 원래 이슬람에서 '육욕(肉慾)과의 싸움' 을 나타내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성전(聖戰)을 의미하는 '지하드' 와 함께 사용된다.

이슬람에선 이교도와의 싸움을 '알 지하드 알 아스가르(작은 전쟁)' 와 '알 지하드 알 아크마르(큰 전쟁)' 로 나누는데, 특히 후자를 무자하다라고 부른다. 무자하다에 참전한 이슬람 교도가 무자히딘(이슬람 자유전사)이다.

1992년 아프가니스탄 무자히딘은 소련의 괴뢰정권인 나지불라 정권을 타도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소련에 대재앙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실패는 후에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 됐다.

당시 아랍권 젊은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무자히딘이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미국은 무자히딘을 '자유의 투사들' 로 찬양했으며, 중앙정보국(CIA)은 그들을 훈련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 부호의 아들인 오사마 빈 라덴은 22세 때인 79년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무자히딘의 자금줄로 전투에도 참가했다. 89년 소련군이 철수하자 빈 라덴은 고국에 돌아왔지만 기업보다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에 몰두했다.

90~91년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이 아랍국가들에 군대를 주둔시키자 미국을 새로운 투쟁 대상으로 삼았다. 빈 라덴의 3대 적(敵)은 미국, 팔레스타인 동포를 억압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이교도에 성스런 땅을 내준 아랍 군주들이다.

왕정 타도를 모의한 혐의로 91년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난 빈 라덴은 그후 수단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게릴라 훈련 캠프를 운영하면서 이집트와 알제리의 반정부단체를 지원했다.

96년 수단 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받고 국외 추방을 결정하자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으로 거점을 옮겼으면, 현재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의 보호를 받고 있다. 빈 라덴은 자신의 직할 조직인 '알 카에디' 를 중심으로 중동과 아프리카에 3천여명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스스로를 '미국의 적(敵)' 이라고 부르는 빈 라덴은 반미 테러활동에 주력해 왔다. 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대사관들에 대한 폭탄차량 테러에 이어 지난해 예멘항에 정박 중인 미국 군함 콜호(號)에 폭탄공격을 강행함으로써 미국 정부가 현상금 5백만달러를 걸었다.

빈 라덴은 "소련 붕괴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더욱 오만해졌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한패가 돼 아랍을 억압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큰 도둑, 극악한 테러리스트" 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세계가 경악한 미국 테러 참사의 주모자로 빈 라덴이 지목받고 있다.

빈 라덴 본인은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잘된 일' 이라고 말한다.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를 읽을 수 있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무자히딘 빈 라덴' 은 한가지 명심해야 한다. 이슬람 대의(大義)를 내세워도 폭력은 폭력이다. 무고한 인명만 희생될 뿐이다. 관용과 타협 없는 증오는 파멸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

정우량 편집위원(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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