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노 대통령 LA발언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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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3일 LA에서 연설한 북핵 관련 내용을 놓고 국내가 다시 한번 소란스럽다. 이미 연설이 끝난 지금, 이 문제를 계속 정치화하기보다는 과연 노 대통령의 연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차분하게 분석해 앞으로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연설의 문제점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대변하고 동맹국의 국익을 배려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정확한 상황인식하에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우선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가? 연설 전문을 읽어 보면 대통령의 국익 인식은 매우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연설에서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한의 핵 포기를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민의 이익을 명확하게 제시, 대변하고 있다. 한편 동맹국인 미국의 국익을 북한과 연계된 테러로부터의 미국민 보호로 설정했으나 그러한 테러 가능성은 작으며, 오히려 북한체제가 위험해질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언급해 북한의 체제 이익을 한국 대통령이 대변하는 것 같은 오해의 소지를 남겼다. 사실 북한의 핵물질이 테러리스트에게 넘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 필요했다.

둘째, 노 대통령의 상황 판단은 정확한 것인가? 노 대통령의 상황 판단은 크게 두 가지 범주에서 논의가 가능하다. 하나는 북한의 핵 포기와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대북정책 향방에 대한 판단이다. 두 가지 모두 현재로서는 추측과 피상적인 자료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될 성격의 사안이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상황 판단의 정확성을 권위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판단이 정말 황당해 국익을 해칠 위험이 있는지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우선 북한의 핵 포기와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포기와 북한체제 안전 보장을 교환할 수 있다고 보고, 북한이 상당한 수준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개혁.개방도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이론적으로만 보면 황당한 판단은 아니다. 국제정치의 억지이론(deterrence theory)과 자본주의 시장의 힘을 분석한 기존의 연구에서 논리적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반대 이론과 연구 역시 존재하나 아직 우월성이 검증되지 못했다. 미국 대북정책의 향방에 관해서는 부시의 재선 이후 보다 강경해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설문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지만 연설문의 행간에서 대통령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대통령의 이러한 판단 역시 그간 있어 왔던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패턴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종합해 볼 때 황당한 판단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이러한 판단과 해법, 연설 내용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반대의 판단과 해법을 상정해 보면 나올 것 같다. 북한은 변화하지 않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핵을 가질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함께 봉쇄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해법을 내놓으면 최선의 경우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도 있으나(이는 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오히려 원하지 않는 급속한 체제 붕괴나 도발을 야기할 수 있어 국민 생명의 위협뿐 아니라 테러집단으로의 핵물질 이전 가능성까지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판단과 해법이 대안적인 판단과 해법보다 국익의 관점에서 열등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연설의 표현과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설문의 내용에서 동맹국의 국익을 배려하는 표현이 약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연설이 미국에 오히려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연설은 끝났고 전 국민이 연설의 부정적 효과를 줄이기 위해 합심해야 할 때다. 그리고 청와대는 동맹국의 국익도 배려하는 성숙함을 보이길 바란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