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정연' 필사본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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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8세기 대표적 한글 대하소설인 '임화정연(林花鄭延)' 필사본(사진)이 발견됐다. 원고지 2만5000장(모두 72책)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지금까지는 내용을 3분의 1로 축약한 활자본(1923년 출간)만 전해졌기 때문에 전모를 파악할 수 없었다.

'홍길동전' '춘향전' 같은 작품은 요즘 단행본으로 치면 120여쪽 분량의 중편소설. '임화정연'은 그 70배가 넘는 초대형 장편으로 중국의 '삼국지' '수호지' 길이의 2배가량 된다. 이 소설의 작자는 아직 알 수 없다.

송성욱(가톨릭대.국문학)교수는 "세계 소설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긴 대하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8세기에 함께 나온 장편인 '완월회맹연' '명주보월빙'과 함께 '장편소설 전성기'를 이끈 작품"이라며 "여성들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비롯해 갖가지 복선과 반전 등의 기법은 근대 소설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필사본 '임화정연'을 소장한 이는 이정호(현대합동법률사무소)변호사. 20~21일 충남 아산시 선문대 국제회의실에서 열리는 '조선시대 한글생활사 자료전'에서 이 소설을 처음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선문대 중한번역문헌연구소와 고려대 중국학연구소가 ''홍루몽'의 전파와 번역'을 주제로 공동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겸한 행사다. 박재연(선문대.중어중국학) 교수가 필사본의 교감과 전산화 작업을 했고, 송성욱 교수는 '필사본 '임화정연'에 대하여'란 논문을 발표한다.

소설은 사대부인 임공자(林公子)가 화소저(花小姐).정소저(鄭小姐).연소저(延小姐) 등 세명의 여인과 우여곡절 끝에 차례로 혼인을 맺는 과정이 큰 흐름을 이룬다. 여기에 사대부 가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 관계, 정치적 갈등, 그리고 여인 사이의 알력 등이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임화정연'이란 제목은 네명의 주인공 성에서 따왔다. 이 소설의 활자본 제목은 '사성기봉(四姓奇逢)'. '네가지 성을 가진 이들의 기이한 만남(奇逢)'이란 뜻이다.

송 교수는 "중국 고전소설이 국가나 사회를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반해 가문을 무대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본격 등장하는 조선시대 소설의 특징을 '임화정연'에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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