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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 고객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쉽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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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30면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유럽을 뒤덮고 있단다. 항공기 운항에 어려움이 생겨 물류대란이 일어나고, 특히 매년 50억 달러나 화훼(花卉, 관상하기 위해 재배되는 모든 식물)를 수출하는 네덜란드의 경우 ‘비서의 날(Secretary’s Day)’ 특수를 날릴 지경이다.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밴쿠버는 지금 날씨가 환상적으로 바뀌고 있다. 사실 여기는 봄·가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부터 3월 정도까지는 비가 많이 오며, 커피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 정도로 날씨가 으스스하다. 4월부터 9월까지는 세계 최고의 기후를 자랑한다. 산모가 출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통증 사이에 잠깐씩 찾아오는 편안함 때문이라 한다. 우울증에라도 걸릴 것 같은 우기(雨期)가 지나면 찬란한 대지가 보란 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캐나다의 자연은 너무나 풍성하다. 아름드리 뻗은 나무와 아기자기한 들꽃들이 그림 같은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도 봄이 오면 사람들은 화단을 단장하고 동네 주변에 꽃이나 나무를 심는다. 그대로의 자연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은데 말이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찾는다고 하지 않는가. 캐나다 사람들은 화려한 자연에 둘러싸여 살아왔기 때문에 꽃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꽃 장식은 이들에게 특권이자 의무처럼 받아들여진다. 자연이 이들에게 가르침을 준 것이다. 아울러 이들이 원하는 화훼를 원하는 시기에 판매하는 가게들이 주위에 즐비하다. 이맘때가 되면 홈디포, 코스트코 같은 소매할인점은 물론이고 동네 수퍼마켓까지 화훼를 판매한다. 이윤이 많이 남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꽃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하라는 배려 차원이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금융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금융의 참맛을 느껴본 고객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릴 때 세뱃돈을 받으면 돼지저금통에 모았던 기억이 있다. 돼지저금통 속의 돈은 영원히 원금뿐이다. 은행에 맡기면 이자가 이자를 낳아, 이자만 원금 이상이 될 수 있다. 이른바 ‘복리(複利)의 마술’이다. 그러나 요즘 은행원들은 단순한 진리를 설명하는 대신, 자본시장상품 판매에 열을 올린다. 증권회사는 어떤가. 빚을 내어 주식투자하면 위험하다는 조언만 되풀이하면서 신용거래, 미수거래, 홈트레이딩, 모바일트레이딩 등 새로운 제도와 첨단기법을 동원해 개미투자자의 쌈짓돈 쟁탈전에 혈안이다. 1990년대 말 어려움을 겪던 보험회사에 저축성 보험을 들었던 고객에게, 당시의 고금리 상품이 역마진을 초래한다며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 것을 권유하는 곳이 우리나라 보험회사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상장사이다 보니 실적이 우선이다. 이른바 주주가치 극대화가 최대 목표다. 그런데 그 주주가 주식시장 거래를 통해 수시로 바뀌니 단기성과가 중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금융에는 2대 8의 파레토 원칙이 적용된다. 상위 20%의 고객이 수익의 80%를 가져다준다는 뜻이다. 돈 안 되는 보통 고객은 뒷전으로 밀리고 부유층(HNWI:high net worth individual) 대상의 VIP마케팅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은 주주가치를 희석시킬 수 있다.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러 온 50대 고객이 있다고 치자. 혹시 모를 재난에 대비해 유언장 서비스를 대행해 주겠다고 조언하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고객과 친해질 수 있고, 고객의 재무상태나 투자성향 등 모든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게 된다. 당장의 실적으로 연결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극대화에 기여할 것이다. 2대 8의 원칙은 고객의 역동성을 무시하고 있다. 고객의 프로파일(profile)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며 수익 기여도가 높은 고객의 충성도(loyalty)는 낮을 수 있다. 돈 안 되던 고객이 큰손이 될 수 있고 공을 들였던 부자고객이 하루아침에 거래를 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객의 특성은 금융회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금융회사는 지점 또는 대리점 형태의 채널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금융회사와 소매할인점은 대동소이한 영업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어떠한 상품을 판매하느냐에 따라 고객의 복지 수준은 달라질 것이다.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 차려놓은 밥상이 훌륭하다면 고객의 입맛은 따라갈 것이다. 고객 일인당 수익성이나 평당 수익성만을 따질 것인가, 아니면 고객과의 장기관계와 만족도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이 지난 9일 발표되었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단골메뉴다. 이런 미봉책은 서민들을 점점 더 곤궁하게 만들 수 있다. 이들에게 자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어넣고 감내할 수 있는 리스크 수준까지 신용을 지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금융회사의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할 순간이다. 이것이 진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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