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있는 데 가서 편하게 살아…" 울음바다 된 화장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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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희생 장병들에 대한 첫 화장이 시작된 24일 오후 경기 수원 연화장에서 故 김경수 상사의 유족들이 동료장병들의 경례을 받으며 평택 해군2함대로 향하고 있다.【수원=뉴시스】

“범구야, 엄마가 너 혼자 보내서 미안해. 아빠 있는 좋은 곳에 가서 편히 살아. 엄마 목소리 듣고 있지?”

천안함 희생자 고 정범구 병장의 어머니는 아들이 누워 있는 관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생전 아들이 입었던 흰색 택견 도복과 검은띠를 가슴에 품은 채였다. 곱게 접은 도복에는 아들이 저 세상에서 입을 옷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어머니의 애절함이 묻어 있었다.

천안함 희생장병 6명의 시신을 처음으로 화장하는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연화장 주변에는 장병들을 보내는 가족들의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오전부터 희생 장병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연화장에서 고인을 기다렸다. 시민 참배객들을 위해 연화장 입구에 설치된 합동 분향소에는 고 문규석 원사, 고 김경수 상사, 고 이상민 하사, 고 강현구 하사, 고 정범구 병장, 고 안동엽 병장의 위패가 나란히 섰다. (해군은 고인들을 1계급씩 추서했다.)

오후 12시30분 평택 제2함대사령부를 떠난 영구차 일행은 오후 1시50분쯤 연화장으로 들어섰다. 경찰 순찰차와 헌병차가 길을 텄고 영구차 6대와 유족들을 태운 버스 7대가 뒤를 따랐다. 영구차와 화장로 입구에 영송병 4명이 도열했다. 흰색 마스크를 쓴 채 ‘필승’ 구호와 함께 전우들을 보내는 영송병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고인과 가족의 마지막 면회시간은 10분. 사진 속에서 환하고 늠름한 표정의 고인들을 보내는 가족들은 “어떡해”를 되뇌며 통곡했다.

고 정범구 병장의 담임을 2년 동안 맡았던 수원정보과학고등학교 강영실 선생님은 이 자리에서 제자를 위해 써 온 편지를 꺼내 읽었다.

“선생님은 바다를 참 좋아했는데, 이젠 바다도 싫고 물도 싫어졌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서 찍은 사진도 그대로고, 선생님과 친구들도 그대론데 너만 없다는 게 실감이 안나. 선생님 제자여서 정말 고맙다. 이젠 널 가슴에 묻을게. 범구야, 사랑해…”

애써 눈물을 참던 고 안동엽 병장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이 화장로로 들어가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고 김경수 상사의 영정사진 옆에는 축구공이 놓였다.

강현구 하사의 영정 앞에서 여동생은 넋을 잃은 채 화장이 끝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오후 4시 5분. 부하들에 앞서 화장로로 들어갔던 고 문규석 원사가 2시간 만에 사기로 된 흰색 봉안함에 담겨 나왔다.

4시50분 고 정범구 병장을 끝으로 이날 화장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미 눈물조차 말라버린 유족들은 힘겹게 걸음을 떼 고인의 뒤를 따랐다. 고인들이 평택2함대사령부로 돌아가는 길에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수원=유길용 기자 y2k753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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