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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식인 지도] 백남준과 아방가르드 친구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백남준이 세계적인 '남준 팩(Nam June Paik)' 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세기적인 아방가르드들과의 친분이 있었다.

나이 24세에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독일에 당도한 이래 백남준은 아방가르드 서클에 경도되면서 존 케이지.요셉 보이스, 그밖의 '플럭서스(Fluxus)' 의 요체를 이룰 행위예술가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이야말로 백남준의 정신적.창조적 후원자로서 미래의 백남준을 키워내는 온상이 된다.

1950년대 말 가난한 극동의 나라에서 온 무명의 청년 백남준과 이미 일각에서 석학으로 널리 이름을 떨치던 케이지와의 만남은 '운명적' 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유럽 전통음악의 한계를 깨닫고 음악의 새로운 존재론을 찾아 방황하던 그가 케이지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경력뿐 아니라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된다.

하모니보다는 비트에 관심을 갖고 동양의 선(禪)불교로부터 음악적 발상을 부여받은 케이지의 음악철학은 당대 진취적인 청년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백남준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세뇌적 계기가 되었다.

백남준은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거나 바이올린을 부수는 등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행위음악으로 독일 전위 음악계의 '앙팡 테리블' 로 부상한다. 이즈음 백남준은 '제로그룹' 의 멤버로서 훗날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군림하는 요셉 보이스를 만나게 된다.

보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비행사로 참전하였다가 추락, 인근지역의 타타르족의 정성어린 간호로 간신히 회생하는데, 백남준이 타타르족과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다. 이 둘은 서로 첫눈에 상대를 알아보고 분신같은 친구가 되어, 특히 샤머니즘에 대한 공통 관심으로 수많은 공연을 함께 했다.

그밖에 리투아니아 출신의 건축가이자 행위예술가 조지 마키우나스 역시 플럭서스 창단자로서 백남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플럭서스는 백남준의 다다적 행위음악을 소통과 참여의 예술로 논리화시켜 줄 뿐 아니라, 비디오예술을 탄생시킨 예술적 모체다.

더구나 이 모체 속에서 백남준은 유명한 에로티카 공연 파트너인 샬럿 무어맨을 만나게 된다. 그의 비디오 예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비디오 퍼포먼스는 무어맨 없이는 불가능한 2인조 전자 해프닝이었다.

백남준의 아방가르드 친구들과의 우정은 끈끈한 정과 인연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예술적 직관 내지 전략과 관계된다. 그는 친지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보를 교환할 뿐 아니라 그들을 창조 모티브로 사용한다.

그의 비디오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케이지.보이스.무어맨을 비롯해 아방가르드 무용가 머스 커닝햄, 현대판 음유시인 앨런 긴스버그, 미디어 퍼포머 로리 앤더슨, 일본인 뉴에이지 음악가 사카모토, 그의 아내이자 행위.비디오예술가 시게코 구보다 등을 통해 '만남의 신비' 를 원동력으로 삼는 그의 예술적 비전을 감지할 수 있다.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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