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파경 (破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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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부부가 갈라져 제 갈 길로 가는 막다른 상황을 파경(破鏡)이라고 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중국 진(陳)나라에 서덕언(徐德言)이란 고관이 있었다.

수(隋)나라 대군의 침략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서덕언은 급히 몸을 피하면서 거울을 둘로 쪼개 한쪽을 아내에게 준다. 훗날 다시 만날 때 증표로 삼자는 거였다. 진나라가 망하자 아내는 본의 아니게 수나라 고관의 수중에 넘어갔고, 아내가 고이 간직했던 거울 반쪽은 까치로 변해 서덕언에게 날아간다. 중국 설화집 『신이경(神異經)』이 전하는 슬픈 사연이다. 깨진 거울이 인연이 돼 서덕언은 아내와 재결합한다는 이설도 있다.

파경에는 부부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도 거울을 깨는 일만은 삼가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요즘 세태가 어디 그런가. 거울 깨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세상 아닌가. 가정법원 대기실에 늘어선 예비 이혼부부의 행렬에 비례해 이혼율도 해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전국에서 12만쌍이 이혼했다. 30년 전과 비교해 정확히 10배로 늘어난 숫자다. 하루평균 3백29명이 이혼하는 꼴이니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살겠다던 부부가 4분에 한쌍 꼴로 파경을 맞는 셈이다.

한밤중에 남편이 문 앞에 신발을 벗어넣고 떠나면 바로 이혼이 성립하는 먼 옛날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파경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른다. 겉보기엔 쉽게 갈라선 부부라도 그 뒤에는 수없이 많은 불면의 밤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죄없는 아이들이 겪게 될 정신적 고통 앞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는가. 매일같이 지지고 볶고 싸우는 꼴 보여주느니 차라리 갈라서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도 낫다는 주장이 요즘엔 설득력을 얻는 모양이지만 아빠나 엄마 없이 자랄 아이들이 입게 될 마음의 상처를 생각한다면 이혼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3년반 전 결혼해 '국민의 정부' 라는 아이를 낳은 민주당과 자민련이 마침내 파경을 맞았다. 애초부터 정치적 이해가 개입된 정략적 결혼이었다고 보면 어차피 파경은 예정된 수순이다. 성격차를 무시한 채 붙어 살며 툭하면 싸우고 헐뜯느니 차라리 깨끗이 갈라져 제 갈길 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파경에 이른 책임을 놓고 서로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이러다 위자료 다툼은 없을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이의 장래가 걱정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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