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밑바닥 성풍속 엽기 코미디 새영화 '귀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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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아무 여자에게나 덤벼드는 사이비 역술인(장선우). 그에게는 같은 해에 태어난 배 다른 세 아들이 있다. 첫째는 퀵서비스 오토바이 운전사(김석훈), 둘째는 견인차 운전사(선우), 셋째는 철거 용역 전문 폭력배(정재영)다. 순서는 집에 배달돼 온 날에 따른 것일 뿐 별 의미는 없다. 어느날 둘째가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려와 아버지에게 선사한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여자의 손만 잡고 잠을 자는 아버지는 자식들이 그녀를 바라보면 "호로자식"이라고 욕을 해댄다. 하지만 첫째는 여자와 동반가출을 시도하고, 둘째는 그녀를 사창가에 팔아넘기려 한다. 교도소에서 방금 나온 셋째는 "엄니뻘로 생각하는데 가슴 한번 만져보면 안 되겠느냐"고 한다.

영화 '귀여워'의 줄거리다. 거의 막가는 얘기 수준이다. 첫째는 순식간에 오토바이를 도둑질하고, 셋째는 걸핏하면 사람을 흉기로 찔러 목숨을 빼앗는다. 동네 아이들은 남의 집에 불지르는 걸 장난으로 여긴다. 영화 광고에는 한 여자를 두고 네 남자가 사랑 싸움을 벌이는 코미디로 포장돼 있지만 '귀여워'는 관객이 쉽게 웃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장르를 따진다면 '엽기블랙코미디'라 부를 만하다.

영화는 서울 청계천 복원공사 때 사라진 낡은 아파트촌을 배경으로 삼았다. 등장인물도 한결같이 밑바닥 인생이다.'나쁜 영화'(장선우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이 영화로 데뷔한 김수현 감독은 "도시라는 공간에서 몸부림치고 기생하는 주변부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난으로, 그냥 웃기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들의 일탈 행동만 따라가다 끝나버린다. 뭘 말하려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굳이 메시지를 찾자면'밑바닥 인생에 일반적 도덕의 기준을 적용하지 마라'정도다. 영화는 동시에'이 작품에 일반적 영화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주문을 하는 듯하다.

김 감독의 스승격인 장선우 감독은 영화에서 아버지 역술인 역을 맡았다. 음의 높낮이가 없어 책 읽는 것처럼 들리는 그의 대사 때문에 영화에서 그나마 볼 만한 정재영의 깡패 연기도 빛을 잃었다. 26일 개봉, 18세 관람가.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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