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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250야드 쯤이야 가볍죠’ 신인왕 노리는 샛별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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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올 시즌 KLPGA투어 신인왕 후보 이정민·허윤경·이미림(뒤로부터)이 넘버 원을 꿈꾸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JNA 제공]

한국 여자골퍼들이 세계 무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승전보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국내 상금랭킹 1위 서희경이 얼마 전 LPGA투어 KIA클래식에서 우승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면서 한국 여자골퍼의 DNA가 바뀌고 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과거엔 체구가 작은 선수들이 피나는 노력과 강한 정신력을 앞세워 키 큰 외국 선수들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등장한 여자골퍼들은 하나같이 체구가 크고 기본기도 탄탄한 편입니다. 올 시즌 KLPGA투어에서 강력한 신인왕후보로 꼽히는 허윤경(20·하이마트), 이미림(20·하나은행), 이정민(18·삼화저축은행) 등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각각 1m70㎝가 넘는 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쾌한 샷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줍니다. 이번 주 golf&은 이들을 만나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를 들여다봤습니다.

훤칠한 체구에 장타는 기본

한국 여자골프는 그동안 파워보다는 정교함으로 세계 무대를 정복했다. 키가 1m57㎝에 불과한 ‘수퍼 땅콩’ 김미현(33·KT)은 페어웨이 우드를 쇼트 아이언 샷처럼 다룬다 해서 ‘페어웨이 우드의 마술사’란 별명까지 얻었다. 지난해 LPGA투어 신인왕과 상금왕을 동시에 거머쥐었던 신지애(22·미래에셋)도 마찬가지다. 키(1m57㎝)는 작지만 볼을 똑바로 때려내는 능력만큼은 세계 최고다. 그래서 백전노장 줄리 잉크스터(미국)는 ‘신지애의 샷이 마치 분필로 선을 그리는 것 같다’며 ‘초크 라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신장의 열세를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한 경우다.

그러나 올해 KLPGA투어에서 치열한 신인왕 경쟁을 펼치고 있는 3명의 새내기들을 보면 김미현이나 신지애의 스토리는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3명 모두 키가 1m70㎝를 넘는 훤칠한 체구를 자랑한다. 허윤경은 키가 1m71㎝, 이미림은 1m72㎝이고 이정민 역시 키 1m73㎝의 대형 신인이다. 올 시즌 KLPGA투어 대회를 2개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이들의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가볍게 250야드를 넘는다. 특히 이미림은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263.6야드로 전체 선수 가운데 3위를 달리고 있다. 허윤경과 이정민도 20위 안에 랭크돼 있다. <표 참조>

허윤경과 이미림·이정민 등은 모두 대원외고 출신에 2008년 나란히 국가대표를 지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아마추어 때부터 치열한 승부를 펼쳐온 숙명의 라이벌이기도 하다. 나이는 이정민이 허윤경과 이미림보다 두 살 어리지만 학년으로만 따지면 7세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이정민이 1년 후배다. 이미림은 중학교에 1년 늦게 들어간 탓에 이정민과 동기가 됐다. 그래서 허윤경과 이미림은 친구처럼 지내고, 이정민은 이미림에게 깍듯이 ‘언니’라고 부른다.

국가대표를 지낸 뒤 지난해 똑같이 2부 투어를 거쳐 올해 KLPGA 정규 투어에 데뷔했다는 것도 3명의 공통점이다. 허윤경은 지난해 2부 투어에서 상금 랭킹 4위, 이정민은 6위, 이미림은 7위에 올랐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24일부터 나흘간 전남 무안에서 열린 시드 순위전에 나란히 출전했다. 특히 올해 시드 순위전은 홍진주·임성아 등 해외파도 참가해 어느 해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다. 그러나 신세대 3인방은 강한 바람을 뚫고 무난히 시드 순위전을 통과했다. 이정민이 4위(7언더파), 이미림은 8위(5언더파), 허윤경은 11위(4언더파)로 당당히 정규 투어에 합류했다.

체계적인 훈련 거친 준비된 스타

신세대 골퍼 3인방은 어릴 때부터 세계 최고의 골퍼를 꿈꾸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이정민은 중학교 1학년 때 대표팀 상비군에 선발된 뒤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전문 트레이너, 심리학 교수와 함께 체력 훈련은 물론 멘털 훈련까지 받았다. 그 결과 2008년 미국에서 열린 폴로주니어 클래식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대회는 미국 주니어 랭킹 70위 이내 선수들이 참가하는 4대 메이저 대회(주니어) 가운데 하나다. 이정민은 올해 2월 태국 전지훈련 중 출전했던 태국여자오픈에서도 우승하며 프로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허윤경은 2006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제주도지사배 우승을 시작으로 그해에만 4승을 거두며 주니어 강자로 군림했다. 허윤경 역시 중학교 3학년부터 체력 전담 트레이너와 함께 체계적인 훈련을 한 경우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나 멘털 훈련까지 하고 있다. 해마다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꾸준히 국제대회 경험도 쌓았다. 2008년 6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더그샌더스 국제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같은 해 일본에서 열린 ‘혼다컵 주니어 골프대회’에서 2위에 오르는 등 해외 무대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이미림 역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이대성(55)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광주시청 육상감독을 만나 3년이 넘게 하체와 순발력·지구력 훈련을 했다. 이미림은 “남들에 비해 우승 경험이 없다는 게 나의 단점이다. 일단 프로무대에서 우승하기 위해 대학 진학도 미뤘다”고 말했다.

개성 강한 3인 3색

신세대 3인방은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을 탔던 선배들과는 많이 달랐다. 기자는 이들이 마치 프로 3~4년차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당하고 자신감에 가득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허윤경은 16일 끝난 롯데마트 여자오픈 마지막날 5년차 김보배(23·현대스위스금융)와 연장전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아깝게 2위에 머물렀다. 서희경·이현주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플레이하면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허윤경과 이정민은 성격이 비슷하다.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필드에서는 무서운 승부사로 돌변한다. 허윤경의 장점은 퍼팅. 이정민은 “윤경 언니는 퍼팅이 정말 좋다. 나보다 더 먼 거리에서 먼저 쏙 넣으면 맥이 빠진다”고 말했다.

이정민은 명품 아이언 샷을 자랑한다. 가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자 프로들은 3, 4번 아이언 대신 하이브리드 클럽을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정민은 2, 3번 아이언을 가지고 다닌다. 남자 프로들도 2번 아이언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림은 “정민이는 남자들도 다루기 힘든 2번 아이언을 쉽게 사용한다. 정민이의 아이언 샷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치켜세웠다.

이미림은 폭발적인 드라이브샷이 장기다. 마음 먹고 때리면 280야드는 가볍게 날려보낸다. 이정민·허윤경이 물처럼 부드럽다면 이미림은 불처럼 몰아치는 스타일이다. 성격도 시원하다. 2부 투어에서 우승은 없지만 14개 대회에 출전해 아홉 차례나 ‘톱10’에 들며 톱10 피니시 부문 1위에 올랐다. 허윤경은 “미림이는 한 번 실수가 나오면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워낙 장타자라 남들보다 버디 기회가 많다. 한 번 몰아치기를 하면 무섭다”고 말했다. 이미림의 베스트 스코어는 8언더파.


이들은 올해 KLPGA투어에서 최소한 2~3승을 노리고 있다. 이정민은 “2부 투어 그린이 대리석이라면 정규 투어는 마치 자갈밭 같다. 2부 투어에서는 짧은 거리에서는 라인을 보지 않고 툭 치면 됐는데 정규 투어는 홀 주변에 변화가 워낙 심해 짧은 퍼팅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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