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 지도] 네트워크가 인류문명 새 틀 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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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1세기 세계사회의 변동을 판독하는 키워드는 단연 '정보' 다. 정보사회.정보기술.정보경제.정보운동, 그리고 정보혁명 등 정보는 사회구조에서 실생활에 이르기까지 현재 진행되는 급격한 변화를 압축하는 개념이다.

이 정보시대를 탐구영역으로 삼아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열고 있는 사회학자가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다.

'정보시대의 계몽주의자' 라 불리는 카스텔스의 개인적 이력은 자못 이채롭다.

1942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후반 프랑코 독재에 저항하는 학생운동가로 활동하다 프랑스로 망명, 니코스 풀란차스에게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를 사사한 후 스물 다섯 살의 나이에 파리 대학의 교수로 취임한 천재적 사회학자다.

나이 서른에 도시사회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도시문제』를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하면서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파리를 떠나 79년 미 캘리포니아대(버클리)에 자리를 잡은 후 사회운동론 연구를 거쳐 지금은 정보사회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왔다.

정보사회학자로서의 카스텔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저작은 1996~98년 연속 발표한 『정보시대:경제.사회.문화』 3부작이다.

무려 1천5백쪽에 가까운 이 책은 대니얼 벨의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73) 이후 가장 주목받는 정보사회에 대한 저작. 사회학은 물론 매스미디어학.정치학.문화학 등 사회과학 전반에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켜 왔다.

*** 시공간 개념 바꾼 정보의 힘

도시사회학자에서 정보사회학자로의 카스텔스의 이런 변신은 돌연한 비약이 아니다. 지적 편력을 추적해 보면 이해가 된다. 그는 1989년에 이미 『정보도시』를 발표해 정보사회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기본 윤곽을 그려왔다.

이 책에서 카스텔스는 기술혁명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사회.기술적 조직양식, 즉 '발전의 정보양식' 이란 개념을 만들어낸다.

카스텔스에 따르면, 이 정보양식의 등장은 외형상 경제 및 사회조직의 분산화를 가능케 하지만, 동시에 전국적인 경영을 통제하는 소수의 대도시-정보도시를 탄생시켰다.

이는 정보처리 능력이 고도로 발달한 데 따른 것이다. 이런 정보도시의 특성을 그는 '이중 도시' 로 파악한다. 정보도시가 높은 소득을 받는 전문 정보인력과 낮은 소득으로 이들에게 종속된 비전문직 하위인력으로 양극화한다는 말이다.

*** 분산화 외형 뒤엔 富의 집중

『정보도시』를 통해 드러난 카스텔스의 문제의식은 3부작 『정보시대』에서 더욱 확대되고 심화된다. 먼저 그는 제1권 『네트워크 사회의 등장』(96)에서 정보사회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그에게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라 할 수 있는 정보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매개는 단연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과 집단이 상호 소통하는 새로운 생산 형태를 지칭한다.

이 네트워크는 지난 30 여 년간 신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조직 및 문화 영역에도 급속히 확산돼 자본주의 전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조화하는 원리로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카스텔스 이론이 정보사회론의 선구자인 벨 이론과 구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벨이 후기산업사회에서 지식과 지식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카스텔스는 네트워크가 정보 전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데다 범위도 전지구적으로 확대됐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정보시대에 대한 사회학적 탐색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 제2권 『정체성의 힘』(97)이다.

이 책에서 그는 정보화와 한 짝을 이루는 세계화의 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한다. 검토분야는 사회운동과 환경운동의 부상, 여성운동의 성장과 가부장주의의 종말, 근대 국가의 약화와 민주주의 위기 등이다.

예를 들어, 그는 정보화와 세계화가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 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미국의 민병대.일본의 옴 진리교를 세계화에 저항하는 정체성의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비동시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정보시대의 명암에 대한 카스텔스의 통찰을 선명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3부작의 마지막을 이루는 『밀레니엄의 종말』(98)은 1권과 2권에서 분석한 정보사회 도래에 따른 현 세계의 역동적인 변화를 추적한다. '산업적 국가주의' 의 위기와 소비에트 연합의 붕괴, 극빈국 제4세계의 등장, 정보자본주의의 블랙홀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배제의 다양한 형태, 세계적인 범죄 경제, 동아시아의 발전과 위기, 그리고 유럽연합의 딜레마는 정보사회라는 거대한 퍼즐을 이루는 다양한 조각 그림들이다.

간단히 말해, 『정보 시대』 3부작은 정보시대의 도래와 그 사회적 파장에 대한 일종의 종합사회학 보고서다. 정보사회의 중핵을 이루는 '네트' 를 가운데에 두고 그 양편에 놓인 자아와 사회와의 역동성을 포착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네트와 자아의 관계가 정체성의 정치로 나타난다면, 네트와 사회의 관계는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근대세계의 종말로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이 단순한 미래학 내지 정보사회 개설서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사적 대격변에 대한 인과적이고 총체적인 분석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 '네트' 와 '자아' 길항에 희망이

정보사회의 미래에 대한 카스텔스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정보 시대의 중요한 결과의 하나는 부자와 빈자 사이의 사회적 양극화이며, 특히 복지국가의 약화는 이런 양극화를 증대시키고 사회적 배제를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시대에는 미디어 정치 내지 '스캔들 정치' 가 부상하면서 근대 민주주의가 새로운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보 시대의 미래는 카스텔스가 그리고 있듯이 암울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현재 낙관론과 비관론이 맞서고 있다. 낙관론은 정보기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 직접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평등한 사회관계와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비관론은 국민국가와 노동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사회복지를 감소시킴으로써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정보사회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보기술 혁명이 과거보다 더 커다란 풍요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전지구적 수준에서나 일국적 수준에서 새로운 형태의 분할과 빈곤을 낳고 있음은 이를 증거한다. 정보화의 긍정적인 측면은 살려나가되, 그 사회적 결과에 적극 개입하는 정보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 마누엘 카스텔스는…

▶1942년 스페인에서 출생.

▶58~62년 바로셀로나대에서 법학과 경제학 공부.

▶67년 파리대학(소르본느) 사회학 박사.

▶67~70년 파리대학(낭테르) 사회학 조교수.

▶70~79년 파리 고등사회과학원 사회학 부교수.

▶79년 이래 현재까지 미 캘리포니아대(버클리) 사회학 교수.

▶68년 이래 현재까지 옥스퍼드대 등 20여 개 대학 및 연구소 초빙교수 역임.

▶98년 공동체와 도시사회학 분야의 공로로 미국사회학회로부터 '로버트와 헬렌 린드상' 수상.

*** 관련 저작들

<미번역 저서>

▶도시문제(1972년, 도시사회학이 고전).

▶도시와 민초들(83년, C.라이트 밀스상 수상).

▶정보도시(89년).

▶정보시대1:네트워크 사회의 등장(96년).

▶정보시대2: 정체성의 힘(97년).

▶정보시대3: 밀네니엄의 종말(98년).

▶네트워크 사회의 등장(2000년, 밀레니엄의 종말의 개정판).

▶인터텟 갤럭시(2001년).

<정보사회론 국내 관련서>

▶전자정보공간론(윤영민, 전예원, 1996년).

▶정보사회의 이해(정보사회학회 편, 나남, 98년).

▶정보화시대의 미디어와 문화(한국언론학회.한국사회학회 편, 세계사, 98년).

▶지식.정보사회학(서이종, 서울대출판부, 98년).

▶정보사회의 이해(권태환.조형제.한상진 편, 미래M&B,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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