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책연구소가 국정홍보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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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또다시 출연 연구기관에 정책 비판을 자제하라고 해 물의가 빚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김부겸(金富謙)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인문사회연구회 회의 중 국무조정실 관계자가 "비공식적으로 연구 결과를 흘려 정부 정책과 상이하게 보도되는 일의 자제를 요망" 한다는 일종의 지침을 국책연구소에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지침은 연구기관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저해해 잘못된 정책을 수정할 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총리실 산하 연구기관장의 선임권을 가진 연구이사회가 만들어질 때부터의 우려, 즉 "출연 연구기관이 결국은 정부 홍보기관으로 전락할 것" 이라는 우려를 확인시켜 주는 셈이 된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은 확정되지 않은 정책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정책 혼선이 있는 듯이 비춰지는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 "비판적 보고서를 내지 말라는 발언은 아니었다" 는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의 회의록에 "중요한 연구 결과의 보도와 기고 때는 관계부처 등과 협의 후 보도하라" 는 내용이 담겨 있는 걸 보면 정부의 설명은 궁색할 수밖에 없다.

요즈음처럼 커다란 정책마다 부적절성, 추진의 미숙, 또는 일관성 부재로 정책의 신뢰성에 대해 기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때일수록 전문가의 의견 개진에 관한 정부 발언은 더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정부가 야당에 정책 조언을 하는 학계 인사나 비판 언론의 '목소리 잠재우기' 에 집착하는 듯한 의심을 받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출연 연구기관은 정부 정책의 지지나 홍보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와 기고를 통해 자유롭게 개진함으로써 바람직한 정부 정책의 수립과 개선에 기여하는 것이 기본 임무라고 본다.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기관으로, 그 설립의 근본 취지가 국민 복리증진에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정부의 엄포에 짓눌려 국책 홍보기관으로 전락한다면 이는 그들의 '주인' 인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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