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단체장 불법운동 단속하자니 찜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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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모(某)자치단체장이 사(私)기관을 몇개씩이나 운영하고 있는 것을 적발했다. 당선무효까지 갈 상황이었지만 청사를 빌려쓰고 있는 처지라 덮어뒀다. 그 단체장은 지금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 (A郡 선관위 지도계장)

"선관위 차량을 지자체 건물에 주차했더니 지자체측이 단속차량이 출동할 수 없도록 차를 막으면서 몇번이나 방해했다. " (충북 B지역 지도계장)

전국의 일선 선관위 지도계장 가운데 68%가 불법 선거운동 단속시 지자체에서 압력을 받고 있거나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관위의 독립성.공정성 확보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원유철(元裕哲)의원이 1백21개 시.군.구 선관위 지도계장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결과다.

일선 선거단속 활동의 실무책임자인 지도계장들은 선관위가 지자체에 세들어 있는 데다 각종 인력지원을 받고 있어 유.무형의 압력과 회유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사례 가운데는 "단체장 부인의 선거법 위반사실을 적발해 조사에 착수했으나 지자체 총무국장.과장이 애걸복걸하고 단체장 본인이 찾아와 어쩔 수 없이 눈감아 줬다" 는 내용도 있다.

"청사뿐 아니라 인력.물품 등을 지자체에 빚지면서 그 지자체를 단속하기에는 심적 부담이 있다" (전북 C지역 지도계장), "암묵적으로 단체장은 봐주기로 합의한 상황" (충남 D지역 지도계장), "세들어 살면서 주인집 심기를 불편하게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경남 E지역 지도계장)는 고백도 있다.

경남의 모지역 지도계장은 "단체장을 걸고 넘어지면 당장 총무과장이 달려오는 상황에서 행정처분 이상을 내릴 수 있겠느냐" 고 반문했다. "선관위 간부들이 (지자체와 유착해)토착화하고 있다" (강원도 F지역)는 비판도 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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