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론 분열이라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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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필자의 지도 아래 석사학위를 마치고 돌아간 중국 조선족 동포언론인은 한국에서 2년 반 지내 본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정말 한국의 대통령은 중국의 13억 인구를 다스리는 국가주석보다 더 힘든 것 같다. "

나는 그 말이 백 번 옳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우리사회는 수많은 문제들을 이제 숨김없이 토해내고 있으며, 그들을 모두 해결하는 데 어떤 최고지도자도 만능일 수 없다.

*** 자유와 혼란은 같은 개념

'최소노력, 최대효과' 의 생존전략은 우주만물의 기본원리다. 그래서 인간은 가급적 생각을 단순화시키고 극단화시켜서 복잡한 고민거리를 털어버린다.

그것 만큼 에너지 절약형 사고방식은 없다. 물론 그러다 보니 털어버린 것 중에 담겨있는 귀중한 보석들을 놓치는 중대 실수를 범한다.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의 범람은 그런 인간의 생존전략에서 나오는 매우 자연스런, 그러나 동시에 매우 원시적인 것이다.

정치권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여야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고 있으며, 노사간의 날카로운 대치는 조정활동을 늘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남북간의 화해 분위기가 다시 냉전시대의 대치국면으로 돌아가려는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언론개혁에 대한 논쟁에서 출발해 최근의 '8.15 통일축전' 방북단의 일탈행위를 둘러싸고, 남남갈등 내지 좌.우익의 극한대결이라는 말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조성될수록 단순 편가르기로 사물을 판단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활개치게 마련이며, 지금 그런 국면으로 이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유' 와 '혼란' 이 같은 개념이라는 것을 많은 사회과학자들도 망각하고 있다. 그것 모두 '선택이 많은 상태' 를 가리킬 뿐이다.

선택할 것들이 여러 개 존재하면 자유 내지 혼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개입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는 데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분법적 사고는 극단적으로 가치개입적인 그런 용어들을 동원한다. 한국사회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데 앞장 서는 지식인들은 대부분 개념 사용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4천5백74억달러로 세계 12위이고, 1인당 GDP는 9천6백75달러라는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아무리 우리 경제가 어렵다손 치더라도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못하지만 기타 주변국들에 비해 우리가 여러 가지로 크게 앞서있는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아시아의 청소년들이 한국의 민주화 발전단계, 문화적 창조단계까지 본받으려는 움직임이 이는 것도 새겨볼 만하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시대보다 비교적으로 안전(secure)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저명한 정치학자 잉글하트는 그런 '안전시대' 에는 탈근대화(post modernization)의 특징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들은 곧 강한 자기 표현, 삶의 질에 대한 높은 욕구, 그리고 권위의 무시 등이다. 실제로 그는 국가간의 비교연구에서 한국의 그런 탈근대화 추세를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지금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삶의 질 향상에 민감하기 시작했으며, 그리고 정치적.종교적 권위는 물론 전통적인 세대간 권위마저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 중간 리더의 역할에 기대

이제 우리의 함정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더 이상 단순 편가르기는 불가능한 사회이며, 이분법적 사고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모든 대소(大小) 공동체들이 자신의 문제들을 자율적으로 검토하고 해결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간 리더' 들의 양성과 훈련이 급선무다. 그리고 그들은 성급한 대안 제시보다 구성원들이 공통의 대안을 창출하도록 돕는 '도우미' 의 역할에 능숙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탈근대화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깨우쳐야 할 일이다.

한국은 흑.백, 청.홍과 같은 이분법적 색(色)의 결을 넘어 무지개 빛 같은 다양한 색의 결을 갖춘, 중국보다 훨씬 다스리기 어려운 나라로 진화했다.

金學銖(서강대 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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