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남남대립 봉합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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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방북단의 행적을 놓고 지난 21일 김포공항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던 진보.보수 세력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은 23일 '강정구(姜禎求) 교수의 사법 처리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 라는 성명을 통해 "다양성이 부정되고 사상의 자유가 봉쇄되는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극우 독재체제" 라고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전국학생회 협의회.사회 진보를 위한 민주 연대등도 "방북단 일부가 성숙되지 못한 돌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색깔 논쟁으로 몰고 가면 안된다" 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반대 주장을 펴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재향군인회 등은 "침략자를 맞아 목숨을 걸고 싸운 노병들이 김일성을 향해 고개 숙이는 사람들에게 항의하는 것이 무슨 보.혁 갈등이냐" 며 "통일 운운하는 사람들이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공산주의자들" 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방북단 문제로 우리 사회가 이처럼 두 동강이 난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출발 하루전에야 졸속으로, 그것도 범민련.한총련 등 이적단체로 규정한 단체 소속원에게까지 편법으로 방북 허가를 내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출발 당일인 지난 15일에도 방북단의 정확한 인원도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댔을 정도니 준비 과정은 불문가지다. 물론 민간 차원의 교류를 체제 유지를 위한 선전 수단으로 악용한 북한에 우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앞으로 북한과의 민간 교류를 완전히 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이번 방북을 놓고 벌어진 우리 사회의 분열부터 봉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방북 파문이 '옥동자를 낳는 산고(産苦)' 라거나 '북한 의도에 놀아나는 퍼주기식 감상적인 통일론' 이라는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생산적인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일단 책임 있는 남북 당국자간 대화를 통해 민간 교류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이번 방북에서 문제가 됐던 만경대.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참배 문제부터 시작해 민간 교류의 범위.내용 등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합의를 바탕으로 국내 보수.진보세력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순리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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