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새 간첩 유형 ‘위장탈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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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고 있는 황장엽씨. [중앙포토]

탈북자나 조선족으로 위장해 입국한 뒤 특수 공작업무를 수행하는 북한 간첩이 하나의 유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경제난으로 생겨난 대규모 탈북자의 국내 입국이 늘면서 북한이 이를 역이용하는 분위기다. 우리의 전방과 해안선 대북 경계망이 강화되자 북한이 직접 침투 대신 우회 루트를 개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가장 최근의 위장 간첩 사례는 조선족으로 위장 입국해 간첩 활동을 하다 2008년 검거된 원정화 사건이다. 원정화는 남북 정상회담 이듬해인 2001년 중국에 머물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으로부터 남한 침투 지령을 받았다. 남한 안착 후 중국을 오가며 냉동문어를 수입하는 등 무역업자 행세를 했으며, 국내 주요 군사기지를 촬영해 북한으로 보냈다. 특히 군 장교들을 포섭해 정보를 빼내기도 했다. 원정화에게 중국산 수산물을 공급하던 의붓아버지인 김동순 역시 2006년 탈북자로 위장 입국해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2008년 검거됐다. 김동순은 입국 뒤 탈북자 단체에 접근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거처 파악을 시도하기도 했다. 북한이 끊임없이 황장엽의 암살을 노렸다는 방증이다.

2004년에는 북한의 정보보안기관 소속 요원인 이 모가 탈북자로 위장 귀순한 뒤 1년3개월간 국내에서 간첩으로 암약하다 잡혔다. 탈북자 위장 귀순 첫 케이스다. 북한군 제11 보위사령부 소속 공작원인 이씨는 2002년 11월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다른 탈북자와 함께 진입해 한국행을 요구했다. 두 달 뒤 동남아 국가를 경유해 한국에 온 이씨는 탈북자 신문기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간첩 활동을 했다. 또 최고의 보안이 요구되는 ‘가’급 국가 보안설비인 탈북자 정착지원시설 하나원의 위치와 경계시설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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