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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154> 먹는 피임약 탄생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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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요즘 낙태 논란이 뜨겁습니다. 생명윤리를 떠나 낙태수술은 여성의 몸과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깁니다. 자궁에서 태아를 제거하다가 자칫 불임이 될 수 있고, 수술 중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되는 끔찍한 사고도 벌어집니다. 낙태 후에는 죄책감과 분노·슬픔이 뒤섞여 우울증을 앓기도 하고요. 평생의 멍에가 될 수도 있는 낙태.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올바른 피임입니다. 어렵지 않은데 마땅히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으셨다고요. 20세기를 빛낸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선정된 먹는 피임약의 탄생 50주년을 맞아 피임의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이주연 기자


16세기 유럽선 양의 맹장 이용, 현대적 콘돔은 19세기에

가장 오래된 피임법은 악어 똥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종이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850년대 사람들은 악어의 똥에 벌꿀이나 열매즙을 혼합해 경단처럼 만든 뒤 성교 전 여성의 질내에 삽입했다. 정자의 활동을 막거나 죽이는 살정제 역할을 기대했던 것이다.

성경의 창세기 38장9절에는 질외사정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유다가 아들 오난에게 ‘형수에게 장가들어 죽은 형의 후손을 이으라’고 하자, 오난은 정액을 바닥에 흘려 자신의 씨가 형의 후손이 되는 걸 막았다는 내용이다. 또한 사정을 하기 전에 성교를 중단하거나, 성교 후 자궁 안에 후춧가루를 뿌리는 등의 피임법이 쓰였다.

그러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가브리엘 팔로페가 남성 성기에 양의 맹장을 덧씌워 쓰던 것에서 유래한 콘돔을 발명했다. 그러나 초기 콘돔은 값이 비싸고 사용법이 어려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후 고무 가공법(가황법)이 발달하면서 1840년부터 현대적인 콘돔이 탄생했다. 1870년 영국에서는 대규모 콘돔 생산공장이 가동되기도 했다.

1956년 먹는 피임약 발명, 여성 사회참여에 큰 기여

피임의 역사는 먹는 피임약(경구피임약)이 개발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과학자와 저명인사 100여 명이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 121가지 중 하나로 피임약을 꼽았을 정도다.

먹는 피임약을 개발한 건 미국 하버드대의 그레고리 핀커스 교수팀. 이들은 1956년 여성의 배란을 억제하기 위해 경구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사용한 첫 임상보고를 한 데 이어, 6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약 사용을 승인받는다. 그렇게 탄생한 먹는 피임약은 이듬해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68년부터.

피임약의 보급으로 여성들은 임신을 쉽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여성의 사회참여가 급속히 증가했고, 성의 자유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사회적으로는 인구조절이 가능해졌다. 피임약은 전통적인 가족구조를 해체시키고,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다.

한국 피임약 복용률은 1~2%로 세계 최저 수준

작은 알약으로 어떻게 임신을 막는 걸까. 먹는 피임약은 여성호르몬을 이용해 배란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자궁입구의 점액을 끈끈하게 해 정자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또 자궁내막을 위축시켜 수정란이 착상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복용법만 잘 지키면 피임 성공률이 99%에 이르는 안전하고 편리한 피임법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명의 여성이 복용하고 있다. 특히 성교육이 활발한 벨기에·뉴질랜드·네덜란드·독일 등 유럽 선진국은 가임 여성 3명 중 1명이 복용할 만큼 보편화돼 있다(세계보건기구). 그러나 우리나라는 피임약 복용률이 1~2%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심지어 복용법조차 모르는 여성이 많다.

이는 학교나 사회에서 피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임약은 매우 안전해졌다. 호르몬 함량이 높아 몸이 붓는 등 일부 부작용이 우려됐던 과거 피임약과 달리 최근의 피임약은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함량을 5분의 1,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 함량을 10분의 1수준으로 낮춰 안전할 뿐 아니라 피임효과 외에도 다양한 건강상 이점이 있다.

대장암 위험 줄이고 ‘생리전불괘장애’ 개선도

실제로 먹는 피임약이 피임이란 기본 기능 말고도 대장암 발병 위험을 줄여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국제암저널). 이외에도 난소암·자궁내막암·난소낭종·양성유방질환·골반염질환·골다공증 등의 질환발생 위험률을 낮춘다. 이 같은 효과는 피임약의 호르몬 성분 때문. 자궁내막을 얇게 해 생리량을 감소시키므로 빈혈 예방과 생리통 감소에 효과가 있다.

먹는 피임약은 여성의 10%가 경험하고 있는 월경과다와 여성의 20~30%가 겪고 있는 생리전증후군(PMS)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생리전증후군은 월경 주기에 따라 호르몬이 변하면서 우울감과 짜증·신경질이 늘어나는 등 정서적으로 예민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신체적으로는 배에 가스가 찬 듯 거북하거나 손발이 붓고 두통과 유방통이 나타난다. 보통 생리가 시작되기 5~10일 전에 발생했다가 생리가 시작되면 함께 사라진다.

증상이 심해지면 생리전불쾌장애(PMDD)로 이어져 일상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피임약 중에는 불쾌장애의 치료제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것도 있다. 피지생성을 줄여 여드름 피부를 개선하고, 신장에서 체내의 수분과 나트륨이 체외로 배출되도록 돕는 피임약도 있다.

생리 시작한 날부터 매일 복용해야

피임약은 어떻게 먹을까. 첫 복용은 생리 첫날부터 3일 이내에 시작한다. 약에 따라 복용 주기가 조금씩 다르나, 생리주기인 28일에 맞춰 21/7 또는 24/4 용법 등을 쓴다. 이는 21일간 복용하고 7일간 쉰다는 뜻이다. 약을 먹지 않는 7일 동안에도 피임효과는 계속된다. 가격은 한 달치가 3500~1만1000원.

처음 피임약을 복용하면 약간의 출혈이 있을 수 있다. 자궁 내막이 자궁벽에서 한 번에 탈락하지 않고 천천히 탈락되기 때문이다. 적응기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호르몬 함량이 낮은 약일수록 소량의 출혈이 찔끔거리는 부정출혈이 있다.

피임약 먹으며 수유하는 건 피해야

매일 먹다가 하루 깜빡했다면 생각이 났을 때 그냥 한 알을 복용하고, 다음날부터 원래대로 계속 복용하면 된다. 원래 복용할 시간에서 12시간 이내라면 피임효과는 계속된다.

그러나 원래보다 12시간 이상 늦었다면 피임효과가 불안하다. 콘돔 등 다른 피임법을 병행하는 게 좋다. 이때는 한 알을 즉시 복용하고 다음 한 알도 원래 먹어야 할 시간에 맞춰 먹는다. 같은 날에 두 정을 복용해도 괜찮다. 하루 이상 복용을 건너뛰었다면 안 먹은 약 중 마지막 한 알과 당일 약, 즉 두 알을 함께 복용하고 다음 날부터 원래대로 복용한다. 출산 후 피임을 한다면 분만 21일째부터 복용한다. 단 피임약을 먹으면서 수유는 하지 않도록 한다.

배란만 억제할 뿐 기형아·불임과 관련 없어

피임약을 먹다가 멈추면 2~3일 후부터 생리를 시작한다. 따라서 여행계획이 있거나 운동경기 등 특별한 계획을 앞두고 있다면 피임약을 통해 불규칙한 생리주기를 조절할 수 있다.

먹는 피임약의 호르몬 성분은 몸에 축적되지 않고 복용하는 주기에만 작용한다. 약을 중단하면 정상적인 생리와 함께 임신이 가능하다. 기형아 출산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불임이 된다는 주장엔 근거가 없다. 반대로 피임약이 여성의 수태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는 있다.

하지만 유방암이 있거나 의심될 때, 간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됐을 때, 진단되지 않은 질 출혈이 있을 때는 삼간다. 또 임신 중이거나 임신이 의심될 때, 혈관염이나 혈전증이 있을 때 역시 피임약을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35세 이상의 흡연 여성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혈전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알맞은 피임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움말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피임연구회 회장), 피임연구회 홈페이지(www.piim.or.kr)

다양한 피임법들

●생리주기조절법과 질외사정

배란일을 피하는 자연 생리주기 조절법은 실패율이 25%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생리 시작 14일 전이 배란일이다. 배란 5일 전부터 배란 후 2일까지 성교를 피한다. 질외사정도 마찬가지다. 보통 질 밖에 사정하면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질 내 사정보다 임신 가능성은 작으나 사정 전에 이미 일부 정자가 분비액에 섞여 배출됐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생리기간에도 안전할 순 없다. 배란기간이 짧고 생리기간이 긴 여성이 생리가 끝날 무렵 성관계를 가지면 3일 이상 살아 있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돼 임신이 될 수 있다.

●콘돔

가장 흔한 피임법은 콘돔. 성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콘돔은 그러나 종종 질 내에서 찢어지거나 터지기 때문에 피임실패율이 5~15%에 이른다. 더구나 아토피 피부염 등 민감한 피부를 가졌다면 다른 피임법을 권한다. 시중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라텍스 콘돔이 알레르기를 일으켜 가려움증을 유발할 수 있다. 간혹 원활한 성관계를 위해 콘돔에 오일 성분의 윤활제를 바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라텍스 재질과 상극이어서 콘돔이 찢어질 우려가 크니 피한다.

●더블더치

우리에겐 생소한 더블더치는 먹는 피임약(여성)과 콘돔(남성)을 병행하는 것. 피임에 대한 인식이 높은 서구에서 많이 사용한다. 네덜란드에선 20세 이하의 청소년 중 18%가 더블더치를 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 방법은 가장 확실한 피임법인 동시에 성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사후피임약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후 72시간 내 한 알을 복용한다. 편리하나 한 번 복용할 때 일반 먹는 피임약의 10배에 이르는 호르몬이 한꺼번에 가해져 여성의 몸에 상당한 무리를 준다. 응급 상황에서만 신중히 복용해야 할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 피임 실패율도 40% 정도로 높다.

●자궁내 장치

자궁내 장치는 피임실패율이 1% 미만으로 극히 낮다. 한 번 시술로 5년 동안 피임이 되므로 간편하나 미혼엔 권하지 않는다. 기존에는 구리로 돼 있는 일명 루프를 많이 썼으나 염증이 걱정된다면 황체호르몬을 함유한 자궁내 장치도 있다. 생리과다와 생리통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피하이식제

성냥개비 크기의 4㎝짜리 황체호르몬이 든 막대를 팔 안쪽 피부 밑에 심는 것. 높은 피임효과가 3년간 지속하나 불규칙한 출혈이 있다. 또한 제거가 힘든데 칼집을 내 빼기 때문에 작은 흉터가 생긴다. 간혹 너무 깊이 박아둬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기도 한다. 이외 영구적인 피임을 위한 난관수술과 정관수술 등이 있다.



뉴스 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위키(wiki) 기반의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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