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24시간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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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루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을 연상하면 일단 책 제목의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진 '24시간 불야성' 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 시대 도시의 풍속도다. 여기에 인터넷 전자 쇼핑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새로운 소비문화의 등장을 알렸다.

그 러나 신간 『24시간 사회』가 단지 식당이나 상점 등 서비스 업종을 24시간 열자는 주장을 되풀이하거나 전자쇼핑에 대해 새삼스레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시간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기업의 업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24시간 사회' 가 더욱 보편화될 미래에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시간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방안을 모색하는 미래서라 할 수 있다.

기업 등 사회 전체 차원에 업무시간의 24시간 확장을 적용해 보자는 주장은 분명 논란의 소지가 충분하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아주 매력적인 발상으로 들릴 수 있고,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24시간 사회=24시간 착취' 라는 잔인한 목소리로 들릴 만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영국에서 1999년 처음 출간됐을 때도 이 점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주장을 하는 저자 레온 크라이츠먼은 영국에서 광고와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하며 BBC 방송 등의 단골 패널로 출연하기도 한다. 덮어놓고 저자의 주장을 무모하다고 무시해버리기 전에 그 발상의 전환에 귀기울여 보자.

저자는 '24시간 사회' 의 확장 적용을 착취의 증대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시간이란 요소를 제거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문제의 출발점은 '24시간 사회' 가 왜 초래됐는가 하는 점이다.

맞벌이부부가 점점 늘어가는 현실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더욱 바쁠 수 밖에 없는 '일하는 어머니들' 의 고단한 일상이 문제의 시작이다.

직장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청소.요리.세탁.육아.공과금납부 등을 거의 혼자 처리하는 직장 여성들, 이들을 포함해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 수밖에 없는 다양한 직종의 현대인들이 24시간 문이 열리는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24시간 사회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다. 밤의 문화를 낭만이나 여유 차원을 넘어 필요에 의한 선택적 요구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4시간 사회' 에서 개인의 부담을 사회적 차원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저자도 제기하듯이 24시간을 적절히 분할하는 '교대 근무제' 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낮과 밤뿐만 아니라 주중과 주말의 구분도 필요없게 돼 시간을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고, 고용효과도 증대하며, 나아가 러시아워의 교통지옥 문제도 해소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또 밤에 활동하기를 좋아하는 올빼미형에겐 오히려 야간 교대 근무가 적성에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문명이 발전한다 해도 인간의 몸은 자연적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다소 안일하고 기계적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번역자의 지적처럼 성급한 찬성과 반대를 떠나 가정과 직장과 여가의 효과적 시간분배를 위해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에 대안을 찾기 위한 하나의 참고서로 활용할만 할 것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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