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독서칼럼] 시류를 거슬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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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위선(僞善)의 사회적 행태가 악이라면, 위악(僞惡)의 본심은 어디 있을까?

아무튼 나는 그들이 보내주는 책을 대할 때마다 자꾸 위악적으로 되어간다. 다음 책은 틀림없이 나올 것인지, 도대체 얼마나 오래 버틸 것인지 따위의 방정맞은 생각들 때문이다.

윤소영 교수의 근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공감.2001)을 받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것은 과천연구실이 펴낸 공감이론신서의 13번째 저작이니, 나의 위악 계산은 벌써 13번이나 빗나간 셈이다.

과천(果川)에 방을 얻어 후배들과 세미나를 하겠다는 그의 결심을 들은 것이 1994년이었다. 매주 진행한 7년 세미나도 만만찮지만, 그 성과를 책으로 펴내는 수고와 열의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회장 명함 찍기에 바쁜 학회나, 연구비 타령으로 세월을 보내는 연구회가 적잖은 우리 학계 풍토에 이런 '고집' 이 여간 반갑지 않다.

*** 자아 비판 통한 진실 탐구

시대의 자취 『이론』에 기고한 그의 글 'PD의 진실 : 또는 어떤 아픈 사랑의 꿈에 대한 해석' 을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혁명이 화두이던 1980년대 그는 민족해방(NL)에 맞서 민중민주주의(PD) 노선의 이론적 대부로 활약했으며, 그가 전파했던 독점강화/종속심화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테제는 PD계열 운동권의 '코란' 이었다.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 알튀세르의 이론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했고, 그래서 스탈린이 변조한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를 담담하게 수긍해야 할 그였지만, 역사적 사회주의 몰락이란 세기의 대격변에 그렇게 담담할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방송가의 뒷얘기처럼 들리는 'PD의 진실' 회상이 실은 비판의 비판이야말로 진실 탐구의 도정이라는 그의 사부 발리바르의 엄한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니, 글쎄 독자인 우리가 어쩌겠는가?

비판의 비판은 다른 말로 자아 비판이 되고, 참회가 될지 모르겠다. 저자의 '참회'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바로 비판적 인텔리의 독특한 임무이다.

"비판적 인텔리란 그 자체 잠재적으로 인텔리가 될 수 있는 대중에게 자신의 언어를 되돌려줌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사상을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이라는 지적에서 나는 그 자신이 이 독특한 임무를 수행할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본론』을 가리켜 노동자 계급을 대변한다는 이 책이 본래도 난해한데, 인텔리의 전문적인 강의가 더욱더 난해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확신에 차서 이르기를 "인텔리의 '선의' 에도 불구하고 이 역설은 대중과 '교통하고' 대중에게 '교육받음' 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정신분석가와는 달리 역전이(逆轉移)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 1994년 여름의 약속이었다.

그 7년 동안 그는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이번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세 권에서 몇몇 핵심 이론을 뽑아 해설하고, 서론으로 아인슈타인의 사회주의론과 부록으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소개했다.

근래 그의 글에는 부쩍 수학이 많이 나오는데, 마르크스에도 경제학 비판에도 특별한 관심이 없는 독자들은 아마도 짜증을 낼지 모르겠다.

대중이 인텔리가 되도록 돕고, 환자로부터의 전염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 책의 독자로 나설 대중과 '환자' 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듯하다.

마르크스 독서가 '천연 기념물' 로 비치는 오늘, 과학적 실천을 내건 과천(科踐)연구실의 이 기념물 보호 작업은 부단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며칠 뒤 대구 소재의 문예미학회가 펴낸 『문예미학』을 받고 나서 나는 똑같이 위악성 조바심에 휩싸였다.

쟁쟁한 교수님들이 회원이라 내가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여러 모로 험난할 출판 투쟁(!)은 혹시 대구 인근 회원들의 몫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나마 지방이 중앙에 맞서는(?) 이변도 유쾌하고, 매번 느끼는 바이지만 그 '불온한' 주제 또한 천연 기념물 지정 대상이다.

예컨대 리얼리즘(1호)이, 마르크스와 현대(3호)가, 루카치의 현재성(4호)이, 해체론과 마르크스주의(6호)가 그렇지 않은가□ 이번 8호는 '비판 이론' 을 특집으로 꾸몄는데 그 주제대로 벤야민에서 하버마스까지 좌파 이론의 범벅이다.

*** 주체 반성에 부단한 경계

권두 논문 '경제-철학 초고의 변혁 이론적 의미' 를 통해 홍승용 교수는 『경제-철학 초고』에 나타난 '청년 마르크스' 의 소외와 혁명 문제를 검토한다.

그에게도 "어떤 아픈 사랑" 의 기억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체의 반성에 대한 요구가 역력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변혁의 주체들이 변혁 운동을 위해 면밀히 인식해야 할 객관적 조건들 가운데에는 적들만 아니라 변혁 주체 자신의 잠재적 역동도 포함된다" 는 지적은 위에서 언급한 비판의 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마녀의 객관적 예언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맥베스 자신의 주관적 참여가 필요한 상황의 역설, 즉 '맥베스 효과' 를 강조한다.

그러나 주체의 결단과 개입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므로 변혁의 과학과 전략은 맥베스의 운명만큼이나 비극적으로 자신의 혁명 전망에 조롱당할지 모른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노도에 아랑곳없이 『자본론』을 다시 읽고 『경제-철학 초고』를 다시 펼치는 이 우직한 시대 착오를, 이 고독한 시류 거역을 우리는 아주 소중하게 보관해야 하리라.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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