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안종관 女대표 감독 '뒤척이는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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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입추가 지나면서 열대야는 끝났지만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안종관 감독(사진)은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타이거풀스 토토컵 국제여자축구대회에서 우승할 때만 해도 한국 여자축구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어깨를 짓누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14일 저녁 여자축구 유니버시아드대표팀이 전지훈련 중인 충북 충주의 한 음식점 주인이 저녁식사 중이던 안감독에게 펜과 종이를 내밀며 사인을 부탁했다. 주인은 "다른 대회에 나가서도 꼭 우승해달라" 고 인사치레를 했다.

순간 안감독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기대 못지않게 여자축구의 현실을 알아준다면 좋을텐데…"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불면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지난달 초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뒤 조련할 시간은 20여일에 불과했고 일본만 잡자는 생각으로 토토컵 대회에 임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우승을 차지했다. 더구나 상대가 중국.브라질 등 여자축구 쪽에선 누구나 인정하는 강호들이었다.

그는 아직 한국 여자축구가 세계 정상권과는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2003년 중국 여자월드컵 본선 진출은 당연하고, 8강도 노려볼 만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잠자리에 들면 천장이 그라운드로 보이면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단 한번의 우승으로 하루 아침에 '동네 축구' 에서 '세계 최강' 으로 둔갑해버린 한국 여자축구.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현재 한국 여자축구 수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결과는 2003년 월드컵 본선 진출로 봐달라" 는 안감독의 당부를 귀담아 들어줄 때다.

충주〓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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