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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해설가 "숲속 궁금증 술술 풀어줍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에어컨에 길들여진 도시인들에게 숲의 고마움을 일깨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숲해설가' 로 통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10일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에 있는 국립수목원(옛 광릉수목원). 방문자센터에서 만난 어른.아이 20여명을 꼬불꼬불한 숲길로 인솔한 숲해설가 김석우(63)할아버지가 구성진 목소리로 설명을 해나간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뽕뽕' 소리를 내며 방귀를 많이 뀐다고 해서 뽕나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꽃은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고 노루오줌이라고 한답니다. "

방귀와 오줌 얘기에 아이들이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는다. 어른들은 "아하!" 하는 감탄사를 터뜨린다.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절을 했다는 회초리감 물푸레나무, 은방울꽃.동자꽃에 얽힌 전설 등. 나무와 풀에 대한 김할아버지의 설명과 해설이 이어질수록 어른 아이할 것없이 듣는 재미에 푹 빠진다.

"무작성 숲을 찾는 것보다 숲 속의 생물체, 즉 나무와 풀.새.벌레 등에 대해 알게되면 그만큼 숲과 자연이 새롭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에게 자연을 이해하고, 친해지도록 돕는 게 숲해설가의 역할입니다. " 김할아버지의 말이다.

같은 시각, 수목원 다른 한켠에서는 숲해설가 김지연(31)씨가 20여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보물찾기 놀이를 하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보물찾기와는 다른 자연체험 놀이인데 아이들은 숲속을 뛰어다니며 보물종이쪽지 대신 새의 깃털을 찾고 있다.

김씨는 "자연을 아는 사람은 악(惡)한 사람이 없다" 며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며, 부모에게 아이들과 함께 수목원을 자주 찾아줄 것을 당부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시를 낭송하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시인이면서 숲해설가로 이곳에서 활동중인 임정현(59)씨가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작나무 앞에서 백석의 '백화' 란 시를 낭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숲해설가가 하는 일에 대해 임씨는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문맹.컴맹 하는 식으로 요즘은 자연을 모르는 사람들을 '생태맹' (生態盲) '이라고 하는데 생태맹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한다" 고 덧붙였다.

현재 숲해설가로 일하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1백여명. 이들은 대부분 숲해설가협회에서 마련한 3개월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현장에 투입된다. 산림 관련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도 있지만 단지 숲이 좋아 틈틈이 짬을 내 활동하는 가정주부.대학생.정년퇴임자도 쾌 많다.

김석우 할아버지는 3년전 교단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집에서 쉬다가 지난해부터 숲해설가로 나선 경우. 매주 금요일엔 국립수목원에서, 일요일엔 관악산이나 양평 중미산에서 숲해설을 한다.

임정현씨는 숲해설가로 뛰어들어 취미생활하던 화초기르기의 범위를 나무까지 확대한 케이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자신도 수시로 전문서적과 씨름한다고 전한다.

1시간 반가량 숲길을 돌며 이들이 받는 보수는 왕복교통비 수준. 활동 무대도 국립수목원과 산림청의 자연휴양림, 서울시내 남산.관악산.아차산 등 몇몇 산에 불과하다. 숲마다 해설 시간도 일요일에 한차례 정도.

그래도 김지연씨의 경우는 이 일을 위해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둔 '숲사랑' 맹렬여성이다. 대학원에서 생물학.환경학을 공부한 그는 지난 3월 한 달에 한 두번씩 아차산에서 숲해설하는 일이 좋아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이 일에 나섰다. 현재 국립수목원.아차산 등을 돌며 숲알리기에 열중이다.

두 아이와 함께 한시간 넘게 김씨의 설명을 들으며 숲길을 걸은 함순교(36.서울 노원구 공릉동)주부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내가 숲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며 김씨에게 감사표시로 음료수 한 캔을 건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숲해설가가 되려면

숲해설가협회(02-747-6518)에서 1년에 두차례 실시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4~6월, 9~11월에 35명씩 모집해 교육한다. 교육시간은 매주 화.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며, 한차례 1박2일동안 현장체험교육도 한다.

교육비는 30만원. 숲해설가에 대한 인기가 높아 올 9월부터 실시하는 교육과정이 이미 마감된 상황이다.

"단순히 교육만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장위주의 체험학습과 전문서적의 연구 등이 필수" 라고 강조하고 있어 내년에 교육을 받더라도 미리 전문서적을 찾아가며 예습을 해두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같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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